8일 전북 전주시의 전북대 의대 본관 현관문은 굳게 잠겨 있고 복도는 불이 꺼져 있었다. 강의실은 물론 예년 이맘때면 붐비던 도서관도 관리 직원만 보일 뿐이었다. 전공의 집단이탈과 함께 의대생들이 수업을 거부하자 개강을 잇달아 연기했던 학교는 더는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해 이날 수업을 재개했지만, 학생들은 여전히 강의실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대학 관계자는 “의대 수업은 오늘 재개했고, 비대면 수업을 병행해 학생들의 강의실 출석 여부와 관계없이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벚꽃 개강’이지만 텅 빈 강의실
이날 개강한 경북대 의대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본과 1∼2학년을 대상으로 온라인 수업을 재개한 대구 중구 동인동 경북대 의대 캠퍼스는 불이 꺼진 채 닫혀 있었다. 본과 3∼4학년에 대한 임상실습은 15일 시작할 예정이다.
의대 한 교수는 “예과와 본과 1∼2년생을 대상으로 수업을 재개했지만, 실제 몇 명이 강의에 참여했는지 알 수 없다”며 “의대생들이 등교 준비 등을 할 수 있도록 2주가량 비대면 강의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르면 수업 일수는 ‘매 학년도 30주 이상’ 충족해야 하므로 학기당 15주 이상 수업시수를 확보해야 한다. 이달 중 수업을 시작해 여름방학 없이 주간과 야간 수업을 하더라도 수업 시간을 채우기 촉박하다.
이에 학교들은 속속 수업 재개에 나서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이날 개강한 전북대와 경북대를 포함, 의대 수업 진행 학교는 모두 14개교(가천대·고려대·동국대 분교·서울대·연세대·영남대·인제대·제주대·충남대·충북대·한림대·한양대)다.
15일부터는 17개교(가톨릭관동대·가톨릭대·건국대 분교·건양대·경상국립대·고신대·단국대(천안)·동아대·부산대·성균관대·연세대 분교·울산대·원광대·이화여대·전남대·조선대·차의과대)가 추가로 수업을 시작할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수업 중단 대학은 9개교로 줄어들게 된다. 다만 학생들의 호응이 없다면 대규모 유급은 불가피하다. 설령 수업이 이뤄진다고 해도 내실 있는 의대 교육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공보의 “수련병원 파견 걱정”
올해 공중보건의사(공보의)가 300명가량 줄면서 지역의료 공백 우려도 커지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신규 편입되는 공보의 716명이 이날 교육을 시작으로 36개월 복무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전산 추첨을 통해 11일 지방자치단체에 683명, 중앙기관에 33명 배치된다.
올해 공보의 숫자는 역대 최저 수준이다. 복무가 만료된 1018명의 70%에 불과하다. 의과가 역대 최저 수준인 255명으로 급감한 영향이다.
복지부는 공보의 숫자가 줄자, 농어촌 의료 취약지 중심 배치를 강화하고 보건지소 순회진료를 확대하는 보완책을 마련했다. 지난 3일 비대면진료 대상을 보건소·보건지소로 확대한 것도 공보의 파견에 따른 공백을 우려한 조치다.
이날 교육 장소인 서울 서대문구 스위스그랜드컨벤션센터에서 만난 신규 공보의들은 지역의료 붕괴를 우려했다. 배모(31)씨는 “공보의는 다들 (이번 사태로 배치 지역이 아닌) ‘수련병원에서 일하게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며 “(공보의 파견으로) 지역의료 붕괴가 가속화하는 건 아닌가 걱정된다”고 했다.
공보의 전역을 앞둔 이모(27)씨는 “수련병원 파견으로 지역의료가 무너진다는 얘기가 많았는데, 신규 공보의까지 줄면 상황이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의사단체 내홍…한목소리 못 내
이런 가운데 ‘단일대오’를 예고했던 의사 단체 간엔 불협화음이 일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전날 기자회견에서 총선 후 이번 주 안에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의대협) 등과 함께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과 관련된 ‘합동 브리핑’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불과 하루 만에 이날 박단 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의협 비대위 김택우 위원장, 전의교협 김창수 회장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지만 합동 브리핑 진행에 합의한 적은 없다”고 밝히면서, 합동 브리핑 개최는 불투명해졌다.
의협 비대위 역시 임현택 차기 의협회장 당선인과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의협 회장직 인수위원회는 이날 “비대위 운영 과정에서 당선인의 뜻과 배치되는 의사 결정과 대외 의견 표명이 여러 차례 있었다”며 “당선인이 의협 비대위원장직을 직접 수행하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비대위에 보냈다. 임 당선인은 지난달 말 회장 선거 직후에도 현 김택우 비대위원장과 공동 비대위원장을 수행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의협 비대위는 지난 4일 윤석열 대통령과 박단 위원장의 만남에 대해 “의미 있었다”고 평가한 반면, 임 당선인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외부의 거대한 적보다 내부의 적 몇명이 나를 더 힘들게 한다”며 만남을 비판하는 듯한 글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