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국회의원총선거에 출마한 대전지역 후보자들의 공약은 도로 확충 등 사회기반시설(SOC)과 재개발·재건축 등 대규모 건설과 관련한 개발분야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성평등과 환경·노동분야는 거의 찾아볼 수 없어 표를 의식한 공약 발굴에 여전히 매몰돼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8일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에 따르면 대전지역 국회의원 후보자 22명의 총 공약수는 846개이다. 이 중 경제·과학분야가 155개(18.32%)로 가장 많았고, 이어 교통분야 139개(16.43%), 공공시설분야 130개(15.36%) 순으로 경제 및 인프라 개발·개선 공약이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환경분야는 18개(2.12%), 성평등분야는 8개(0.94%), 노동공약 12개(1.41%), 의료공약 11개(1.30%)로 사실상 찾아보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주민참여·주민자치 등 자치분권과 균형발전과 관련된 공약도 소수에 불과했다.
입법관련 공약도 78개(9.2%)에 그쳤다. 사실상 지역과 국가에 필요한 법안이 무엇인지, 해당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어떤 법안을 제·개정해야 하는 지에 대한 고민이 없다는 시선이 나오는 이유다.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는 대전시민사회연구소와 제작한 공약 분류 틀을 기준으로 △경제 △문화체육관광 △행정복지 △공공시설 △의료 △교통 △교육 △주거·안전 △환경 △성평등 △정치·안보 △노동 등 항목을 바탕으로 분석했다.
◆성평등·노동·환경공약 1∼2개 그쳐 ‘외면’
대덕구를 지역구로 출마한 후보들의 공약을 보면 전체적으로 개발 및 일자리 창출과 관련한 경제정책이 많았다. 교통 소외지역인만큼 교통 인프라 구축·개선도 주를 이뤘다.
더불어민주당 박정현 후보와 국민의힘 박경호 후보는 경제·과학 공약에 높은 비중을 보이고 있다. 새로운미래 박영순 후보는 교통공약이 많았다. 환경공약은 박정현 후보가 4개로 타 후보에 비해서 많다. 그러나 대청호 규제 완화 공약을 낸 점에 대해선 대전시민 상수원 오염이 우려되는 부분으로 지적됐다.
성평등 공약은 박영순 후보만 제시했다. 박영순 후보는 ‘여성경력단절 방지 및 아빠 육아휴직 강화로 일·가정 양립 대책’을 냈다. 노동공약은 3명의 후보 모두 없었다. 입법관련 공약은 박정현 후보가 12개, 박경호 후보와 박영순 후보 각각 1개였다. 박정현 후보는 대전산업단지 디지털그린산업단지로 재창조, 공공기관 유치 통한 연축신도시 완성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박경호 후보는 대청호와 계족산 연계한 복합문화관광벨트 추진, 조차장부지 개발 등을, 박영순 후보는 비래동-와동-신탄진동 도로개설사업 등을 대표 공약으로 냈다.
동구 후보들 역시 교통·개발공약이 높은 비율을 보였다.
민주당 장철민 후보는 공공시설, 교통, 교육, 주거분야가 많은 비중을 차지했고, 국민의힘 윤창현 후보는 경제·과학분야, 개혁신당 정구국 후보는 경제·행정복지 등을 제시했다. 이들 후보 3명은 모두 환경·성평등·노동공약은 물론 입법관련 공약도 없었다.
서구갑 후보들도 비슷했다.
민주당 장종태 후보는 경제·과학, 공공시설분야 공약 비율이 가장 높았고, 국민의힘 조수연 후보는 공공시설 공약이, 새로운미래 안필용 후보는 교통인프라 개선 공약을 주로 제시했다. 무소속 유지곤 후보는 경제·과학, 행정복지공약이 다수였다.
환경공약은 장종태 후보만 △2030년 재생에너지 3배 확대 △기업 RE100(기업이 사용하는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캠페인)을 위한 제도 개선 △탄소중립산업법(한국형 IRA) 제정 등 4개의 공약을 내놨다. 그러나 RE100지원이나 재생에너지 비율 확대에 대한 구체적 방법 제시는 없었다. 노동분야는 장종태·유지곤 후보만 제시했다.
서구을에선 민주당 박범계 후보, 국민의힘 양홍규 후보, 개혁신당 조동운 후보, 자유통일당 이지훈 후보 등 출마한 4명의 후보 모두 세 가지 공약분야에서 낙제점이었다. 환경공약은 조동운 후보만, 노동공약은 박범계 후보만 제시했다. 성평등공약은 4명의 후보 모두 없었다.
유성구갑 후보들도 성평등·노동·환경공약이 부실하긴 마찬가지였다.
민주당 조승래 후보는 공공시설 분야 공약이 많았고, 국민의힘 윤소식 후보는 교통분야, 개혁신당 왕현민 후보는 경제·과학분야가 많았다.
3명의 후보 모두 의료공약은 없었다. 조승래 후보는 성평등·노동분야에서 각각 2개, 1개 제시했고 환경공약은 왕현민 후보만 있었다. 입법관련 공약은 조승래 후보가 7개, 윤소식 후보 8개였다.
유성구을 후보들은 성평등·노동·환경분야 공약을 골고루 내놨으나 내실면에서는 후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민주당 황정아 후보는 환경·성평등·노동·입법분야에서 각각 1개, 2개, 1개, 4개를 내놨다. 국민의힘 이상민 후보는 환경·성평등·노동·입법분야에서 각각 1개, 2개, 2개, 9개를 제시했다. 새로운미래 김찬훈 후보는 노동과 입법분야에서 각각 1개, 3개를 제시했다.
김찬훈 후보는 공동체 3법 입법을 공약으로 제시하며 주민자치를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후보달과 차별화된 지점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중구의 경우 민주당 박용갑 후보가 환경공약을 3개, 성평등공약은 국민의힘 이은권 후보만이 냈다. 노동·입법분야는 2명 모두 없었다.
◆이미 설립한 고교 신설…엉뚱한 공약 남발도
지역구를 제대로 모르는 듯한 엉뚱한 공약이 나온 사례도 있었다.
대전 서구갑에 출마한 민주당 장종태 후보와 국민의힘 조수연 후보는 공약에 ‘도안고등학교 신설’을 냈다. 그러나 도안고는 2013년에 이미 개교해 졸업생을 배출하고 있다. ‘도안동 고교 신설’ 의미의 오타라고 하더라도 유권자에 정확한 사실 제공이라는 측면에서 부실한 검수와 후보자 자체의 정보 부재라는 비난이 제기되고 있다.
설재균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의정감시팀장은 “후보들의 성평등·환경·노동·입법공약을 살펴보면 알맹이 없이 선언적으로 그친 공약들도 많았다”면서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방법론은 물론이고 숲 조성이나 기후관련 건물 건립 등 무늬만 환경·기후공약인 경우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설재균 팀장은 이어 “성평등공약도 육아휴직 및 안심귀갓길 강화 등 정당 간 차이를 확인하기 어려웠고 노동공약도 주로 공무원 처우개선, 공공기관 노동자 정년 연장 등으로 천편일률적이었다”고 했다.
설 팀장은 “의료 대란이 장기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전지역 국회의원 후보들 중 의료 관련 공약은 거의 없었다”며 “일부 후보가 의료 공공성 확대를 위한 입법공약을 제시했으나 후보 전반은 의료 공공성 강화, 지역 진료 공백 해소, 필수의료 공백을 해결하기 위한 고민이 부족했다”며 “국회의원은 단순히 지역의 경제 개발, 교통 인프라 개선만하는 자리가 아닌만큼 미래 지향적인 방향성 고민과 사회가 직면한 문제 해결에 심도있는 고민을 해야 한다”는 평가를 냈다.
권오철 중부대 교수는 “총선이 양당구도로 선명해지고, ‘정권 심판’이란 거제 의제에 함몰되면서 22대 총선도 ‘삶의 질’에 대한 고민보다는 유권자들에게 보여지는 공약발굴에 급급해 보인다”면서 “지역민의 관심이 있어야 공약 내실도 탄탄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