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 남북관계 산증인’ 통일부 떠나던 날

“저한테는 전부였던 것 같아요.”

 

‘남북회담사의 산증인’으로 꼽히는 허희옥(58) 통일부 기자실장이 정든 통일부를 떠나며 끝내 눈물을 쏟았다.

 

건강 문제로 지난 3일자로 사직한 허 실장은 뒷정리를 위해 9일 서울정부종합청사 6층 한켠에 위치한 통일부 기자실에 들러 마지막 소회를 밝혔다.

 

서울정부종합청사 6층 통일부 기자실장석에는 허희옥 실장이 2006, 2011, 2013, 2014, 2015년 기자들과 함께 방문한 판문점에서 찍은 사진이 보관돼 있다. 2013년까지 비무장지대 내 판문점에서 기자들은 ‘PRESS(프레스)’ 또는 ‘MEDIA(미디어)’라고 영어로 쓰인 완장을 차고 있어야 했고, 2015년 사진에는 뒷배경인 북측 판문각에 많은 관광객이 보여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그는 “근무하면서 재밌었고 다른 걸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기자실이 소중했던 것 같아요”라며 “좋게 나갔으면 좋을텐데 몸이 안 좋은 상태로 나가 너무 마음이 아파요”라고 했다. 

 

허 실장은 1986년 국토통일원 시절 입부해 1998년 1월부터 26년동안 대변인실 소속으로 기자실을 관리하는 기자실장직을 수행했다.

 

부처의 일정과 보도자료, 공지문 발송 등을 챙기고 기자실을 관리하는 일상 업무 외에도 대변인실 직원과 기자들의 대소사를 챙기며 없어선 안 될 가족처럼 역할했다. 뿐만 아니라 통일부 특수성 탓에 남북회담 최일선 현장을 지키는 일도 했다. 국민에게 전달해야 할 소식이 있는 곳, 기자가 가는 곳에는 허 실장이 반드시 따라가 프레스센터 설치와 운영 등 취재지원을 했기 때문이다. 판문점과 평양, 개성공단, 금강산 등에서 열린 각종 남북 회담과 이산가족 상봉 등 민족사의 장면들이 언론 매체를 통해 남겨진 것은 허 실장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취재지원을 원활히 수행했기에 가능했다. 북측 인사들까지 그를 알아봐 2019년엔 리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일 잘하는 기자실장 선생”이라고 했을 정도다. 그렇게 그가 챙긴 남북회담은 약 200건에 달한다. 1987년 장관급 표창부터 2019년 대통령 표창까지, 그가 정책소통과 여성공무원 권익향상, 남북회담 행사 유공 등을 사유로 받은 포상은 총 9건에 이른다. 업무 외에 사적으로 탈북민을 돕거나 기부 등의 활동도 해온 것이 알려지기도 했다. 2013년부터는 암투병으로 고생하면서도 자리를 지켰다.

 

그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했으나 담당 업무가 바뀌는 다른 직원들이나 기자들과 달리 회담 현장에서 자기 업무에 가장 통달한 베테랑이자 프로였다. 출입기자들과 통일부 직원들은 “앞으로 허 실장이 없을 회담 자리가 잘 상상되지 않는다”고들 말한다. 그가 직원들과 기자들에게 받은 꽃다발을 들고 마지막 기념사진을 남기려 정부청사 복도에 나와있는 동안, 여러 통일부 직원들이 그를 알아보고 마지막 인사를 전하거나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자처했다. 

 

허희옥 통일부 기자실장이 서울정부종합청사 7층 통일부 간판 앞에서 직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그는 취재지원 담당 남측 인원으로는 홀로 유일하게 참가했던 2018년 ‘10·4선언 11주년 기념 평양민족통일대회’ 행사를 가장 기억에 남는 방북 출장으로 꼽았다.

 

그는 “6개 회담이 동시에 진행됐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를 추념하며 북에서 심은 나무에 흙을 뿌리고 제를 올리는 행사도 있었다. 무엇보다 북한 공연단과 대규모 카드섹션 등 화려한 공연도 봤는데, 너무 좋으면서도 기계같이 움직이는 아이들이 불쌍해 마음이 안 좋았던 그때의 기분이 왠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