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간49분.’
슬립테크(sleep tech·숙면 기술) 스타트업 무니스가 고객 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한 MZ세대(1980년대∼2000년대 출생) 평균 수면 시간이다. MZ세대의 82%가 밤 12시 이후 잠들었으며 평균 취침 시간은 새벽 1시54분, 평균 기상 시간은 오전 8시12분이었다. 무니스는 지난해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자사 수면 솔루션 ‘미라클나잇’의 MZ세대 이용자 수면 시간대 데이터 등을 통해 이 같은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한국인의 수면 부족 및 낮은 수면의 질은 MZ세대에게만 국한된 얘기는 아니다. 레즈메드가 최근 ‘세계 수면의 날(3월15일)’을 맞아 실시한 글로벌 수면 인식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수면의 양과 질에 대한 만족도와 관련해 ‘만족스럽다’고 답한 한국인 응답자는 각각 38%, 36%에 그쳤다. 글로벌 평균이 각각 50%, 49%인 것과 비교하면 10%포인트 이상 낮은 수준이다. 해당 조사에는 한국, 미국, 영국, 중국 등 총 17개국 3만6000여명이 참여했다.
수면 장애가 개인 차원의 문제를 넘어 사회·경제적 손실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는 가운데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슬리포노믹스’(Sleeponomics) 시장이 주목받고 있다. 슬리포노믹스란 수면(sleep)과 경제학(economics)을 뜻하는 영단어를 합성한 말로, 수면 부족 문제를 겪는 이들이 ‘꿀잠’을 위해 다양한 제품에 돈을 투자하는 소비 현상을 뜻한다.
실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국내 수면 장애 환자는 2018년 85만5025명에서 2022년 109만8819명으로 28.5% 급증했다. 수면 장애는 불면증, 수면 관련 호흡장애, 과다수면증, 일주기 리듬 수면 장애, 수면 관련 운동장애 등 수면과 관련된 여러 질환을 통칭한다.
◆2명 중 1명 “‘꿀잠’ 위해 기술 도움받을 의향 있다”
여러 슬리포노믹스 분야 가운데 대표적인 건 슬립테크다.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을 활용해 고객의 수면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개선 방안을 알려주는 애플리케이션(앱)이나 수면 건강에 도움을 주는 기기 등이 슬립테크에 해당한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가 지난해 전국 만 20∼59세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96.7%가 ‘잠을 잘 자는 것이 건강에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며, 58.8%는 ‘잠을 잘 자기 위해 기술의 도움을 받을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향후 1년 내 슬립테크 제품을 구매할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28.3%가 ‘구매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KB경영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돈 되는 잠, 슬리포노믹스’ 보고서에 따르면 슬리포노믹스 분야에는 슬립테크뿐만 아니라 프리미엄 침구류, 숙면에 도움을 주는 차와 천연 수면제 성분을 함유한 식음료, 셀프 케어로 마음의 안정과 숙면을 유도하는 뷰티 제품 등도 포함된다.
슬리포노믹스 열풍에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4’에서는 반지·헤어밴드·마스크·안대 등 숙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여러 형태의 웨어러블 기기가 30종 이상 출품되기도 했다. 보고서는 “헬스케어 디바이스 전문 기업 텐마인즈(10Minds)는 AI를 탑재한 베개가 코 고는 소리를 인식해 자동으로 부풀어 고개를 움직이게 하는 ‘모션필로우&시스템’으로 최고혁신상을 수상했다”며 “비알랩(BRlab)은 자체 개발한 수면 데이터 분석 시스템을 탑재한 모바일 앱으로 수면 전후 생체 데이터와 수면 데이터를 모니터링해 수면 상태를 제어하는 사용자 최적화 AI 수면 솔루션 브랜드 ‘벤자민(Benzamin)’을 공개했다”고 설명했다.
◆“수면 장애 환자 급증…시장 성장 계속”
슬리포노믹스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글로벌 기업들의 각축전도 펼쳐지고 있다. 앞서 삼성전자는 지난해 5월 미디어 브리핑에서 헬스 사업 미래 전략의 큰 축 중 하나를 ‘수면’ 기능으로 꼽고, 갤럭시워치에 개인화된 건강 관리 기능을 계속 추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삼성전자는 수면 중에도 편하게 착용할 수 있는 ‘갤럭시 링’을 통한 디지털 헬스 기능 강화 등도 추진 중이다.
보고서를 작성한 방석훈 KB경영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애플은 ‘손목’, 삼성은 ‘손가락’ 등 다양한 웨어러블 기기를 활용해 슬립테크 제품의 고도화를 추구함으로써 슬리포노믹스 시장 선점을 시도하고 있다”며 “LG전자는 애플·삼성과 달리 2022년 사내독립기업 ‘슬립웨이브컴퍼니’를 설립하면서 슬리포노믹스 시장에 진출했고 이후 차별화된 전략을 통해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고 짚었다.
이뿐만 아니라 특정 분야 및 고객을 대상으로 전문성을 갖춘 슬리포노믹스 제품을 출시하는 중소기업들도 눈에 띈다. 아미라헬스(Amira Health)는 스마트팔찌와 급속 냉각 매트리스를 활용해 폐경기 여성이 자주 겪는 열감으로 인한 수면 문제를 해소하는 안면 홍조 모니터링 프로그램 ‘테라 슬립(Terra sleep)’을 공개했으며, 드림에그(Dreamegg)는 신생아부터 성인까지 편안한 수면을 돕는 백색소음 기계를 선보였다.
수면 산업 생태계와 기업 육성을 위한 국가 차원의 지원도 본격화했다. 충청남도는 도비 등 245억5000만원을 투입해 수면산업진흥센터를 마련하고 지난달 15일 개소식을 진행했다. 센터는 수면 산업 제품 표준화 및 인증·실증, 수요 맞춤형 기술 지원 등의 기능을 수행한다.
방 연구원은 “수면 전 스마트폰 사용, 카페인 과다 섭취, 스트레스 누적 등으로 수면 장애 환자가 급증함에 따라 슬리포노믹스 시장 성장은 계속될 전망”이라며 “슬리포노믹스 시장은 그동안 의료기기 기업,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제품 개발이 이뤄졌으나 향후에는 이종 분야 기업 진출과 기업 간 협력이 활발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