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이용해 회로 새기는 노광기 반도체 미세화 역사 핵심 중추 EUV 등장으로 한 단계 진보 한국도 활용 기술 투자 고민을
2019년, ASML이라는 회사의 주가가 폭등하기 시작한다. 100조원 수준이었던 ASML의 시가총액은 5년간 5배나 올라 2024년 2월 기준 삼성전자보다 높아지게 되었다. 이 회사는 EUV라고 부르는 노광장비를 TSMC, 삼성, 인텔 등에 독점 공급한다고 한다. 노광은 무엇이고, EUV는 무엇이길래 이렇게 이슈가 되는 것일까?
반도체 산업의 미덕은 소자를 작게, 많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반도체 안의 소자 밀도가 높아지면 같은 면적을 가진 반도체에 더 많은 기능을 부여할 수 있다. 덕분에 작년의 반도체보다 올해의 반도체가 더 좋아지게 되며, 작년에 불가능했던 일이 올해는 가능해지는 것이다. 반도체 회사들은 이를 웨이퍼라고 부르는 원판에 회로 패턴을 새긴 뒤 깎거나 물질을 채움으로써 해낸다. 흔히들 8대 공정이라 부르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이 노광이다. 노광은 빛을 이용해 소자의 모양을 웨이퍼 위에 새기는 과정이다. 노광기는 붓과도 같다. 붓이 가늘수록 더 가느다란 글씨를 쓸 수 있듯, 노광기의 빛이 더 정밀할수록 많은 소자를 웨이퍼 표면에 새길 수 있다. 이용하는 방법도 직관적이다. 렌즈를 이용해 빛을 모으고 거울을 이용해 빛의 방향을 바꾼 뒤, 회로 패턴이 그려진 마스크를 통과시켜 웨이퍼 표면에 쬐어주면 웨이퍼 표면에 회로가 그려지게 된다. 장비회사들은 KrF, ArF(DUV) 등의 더욱 가느다란 붓을 제공했고, 반도체 회사들은 이를 이용해 더욱 미세한 소자를 만들었다. 노광기의 역사는 곧 반도체 미세화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노광도 고난을 맞이하게 된다. 2000년 초반 불화아르곤(ArF) 193nm 레이저 이후 반도체 제조에 사용할 더욱 가느다란 붓을 찾지 못했다. 광원의 종류는 무궁무진했지만 더욱 정밀하면서도 전력 효율이 좋고 출력이 뛰어난 광원을 찾지 못한 것이다. 회사들은 액침(Immersion), 멀티 패터닝 기술 등을 이용해 좀 더 미세화를 진행시켰지만, 새로운 광원을 찾아내지 못하면 결국 미세화는 멈출 상황이었다.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EUV이다.
과학자들은 주석(Sn)이라는 금속을 작은 방울로 만들어 공중에 띄운 뒤, 금속방울에 레이저를 쏘면 13.5nm의 빛이 고효율로 생겨남을 알았다. 이것만 해도 꽤 어렵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 빛은 기존에 사용하던 렌즈와 거울로는 모으거나 방향을 바꿀 수 없었다. 빛을 만들어도 원하는 곳에 모을 수 없으면 소용이 없다. 다행히도 과학자들은 이 문제의 해답도 찾아내게 된다. 바로 실리콘(Si)과 몰디브덴(Mo)을 아주 얇은 두께(7nm)로 번갈아 포개어 만든 거울을 사용하면 13.5nm의 파장을 반사시킬 수 있음을 알아내게 된다. 13.5nm의 빛은 공기에 흡수되는 성질이 있었기 때문에, 노광기의 내부를 완전 진공으로 만들어야 했다. 누군가 일부러 꽁꽁 숨겨 놓은 것 같은 기술이지만, 어쨌거나 EUV 덕분에 반도체 회사들은 미세화를 더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ASML이 주목받는 이유는 명확하다. EUV노광기를 제조하는 세계 유일의 회사이기 때문이다.
반도체 제조 강국인 대한민국에게 EUV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 앞서 보았듯, EUV는 매우 비싸고 어려운 기술이다. 제조 비용 부담이 크다는 것은, 옛날만큼 새로운 소자를 많이 얻을 수 없다는 의미이다. 이로 인해 반도체 회사들은 구 공정과 신 공정의 반도체를 결합하여 쓰는, 패키징 기술에 투자한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기존 반도체의 성능 향상이 만족스럽지 않으니, 스스로 반도체를 설계해 반도체 소자를 자신들의 목적에 맞춰 쓰려고 한다.
독자분들 역시 최근 반도체 관련 용어와 반도체 관련 기업 수가 폭증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느끼고 있을 것이다. 이 현상의 원인 중 하나가 바로 노광의 어려움인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새로운 반도체 회사를 생각해 보아야 할지도 모른다. 미세화가 없거나 느리더라도, 고객들에게 새로운 가치를 줄 수 있는 반도체 회사란 무엇일지 고민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