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일, 한국·필리핀 수교 75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다. 필리핀 클라크 국제공항에서는 한국과 필리핀 공군이 공동으로 우정 비행을 했다. 비록 TV를 통해서 본 것이지만 참으로 흐뭇한 광경이었다.
한국이 필리핀과 수교한 것은 1949년이다. 필리핀은 대만, 미국, 영국, 프랑스에 이어 한국의 다섯 번째 수교국이 되었다. 이는 당시 필리핀의 위상이 상당하였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필리핀은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3개월 후 육군을 파병해 주었다. 5년간 총 7420명을 파병했는데, 그 규모로 보면 16개국 중 여섯 번째였다. 이 과정에서 116명의 젊은이가 한국을 위해 귀한 목숨을 잃었다.
1960대만 해도 필리핀은 한국보다 잘사는 나라였다. 1960년 필리핀의 1인당 소득은 254달러로, 79달러에 불과한 한국의 세 배가 넘었다. 건축 기술도 한국보다 앞서 있었다. 1961년 광화문 네거리에 들어선 미국대사관과 문화체육관광부 건물(일명 ‘쌍둥이 건물’)은 미국 회사가 지었지만, 시공과 감리는 필리핀이 했다. 1963년 문을 연 장충체육관도 설계는 한국인이 했지만, 시공과 감리는 필리핀 기술자의 도움을 받았다. 1966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마르코스 대통령을 만난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도 당신들만큼 잘살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필리핀은 잘사는 나라였다. 그해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130달러였고, 필리핀은 299달러였다.
참고로, 한국이 필리핀을 1인당 국민소득으로 추월한 것은 1970년부터이다. 필리핀은 문화적으로도 강한 나라였다. 1978년 프레디 아길라(Freddie Aguilar)가 Anak(아들)라는 노래를 불러 큰 인기를 얻었다. 타갈로그어로 된 이 노래는 세계 56개국에서 27개 언어로 번안돼 수백만 장의 앨범이 팔렸고, 당시 아길라는 아시아 최고의 가수였다.
장한업 이화여대 다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