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 국민 생각과 무관한 일 계속 벌여… 재창당 수준 혁신을” [심층기획-보수 전면 개조하자]

(상) 민심에서 멀어진 보수

“당 중진들 선수 쌓일수록 강경 보수화
극단 지지층에만 호소 중도층 이탈 불러
尹 국정 운영·권위주의적 행태에 실망
비전 정책은 사라지고 네거티브로 접근
선거 거듭할수록 극단 10%에만 집중
영남 중심으로 뭉쳐 외연 확장 아닌 축소”

국민의힘이 8년 새 두 번의 총선에서 연거푸 대패했다. 한국갤럽의 지난달 유권자 정치 성향 조사를 보면 보수(32%)가 진보(28%)보다 앞서지만 국회에선 보수 정당이 3분의 1 의석밖에 얻지 못했다. 재창당 수준의 혁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안팎에서 쏟아지는 이유다. 세계일보는 보수의 연속된 패배 원인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 3회에 걸쳐 연재한다.

 

보수의 책사로 불리는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11일 중도 확장의 실패를 패인으로 꼽았다. 윤 전 장관은 통화에서 “보수가 지는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며 “다수 국민의 생각과 무관한 일을 계속 벌이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윤 전 장관은 “당의 중진들이 점차 강경 보수화돼 가고 있다”며 “선수가 쌓여갈수록 좁은 세계에 갇히게 된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지 않다 보니 그것이 세상의 전부로 착각한다”고 말했다. 윤 전 장관은 “보수의 외연을 더 확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22대 총선 결과 평가 토론회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11일 서울 종로구 경실련 사무실에서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평가 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다. 뉴시스

이번 총선 국면에서도 지난달 말 국민의힘 지도부는 ‘나라를 종북세력에게 내주지 맙시다’라는 강경 메시지의 현수막을 걸라고 후보자들에게 지시했다가 수도권 의원들의 반발에 막혀 철회한 바 있다. 중도 표심이 중요한 전국 선거에서 극단 지지층에 호소하는 선거 캠페인은 필연적으로 중도층의 이탈을 부른다. 문제는 이 같은 전략이 보수층 결집에 효과를 냈는지도 미지수라는 점이다. 이번 총선에선 보수의 심장이라 불리는 대구가 전국에서 두 번째로 낮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이로 인해 국민의힘이 텃밭 지역구 의석은 지켰지만 비례대표 의석에선 손해를 봤다는 분석이다.

 

실제 2020년 총선 패배 이후 당시 미래통합당이 만든 총선백서에서 꼽은 패배 원인을 살펴보면 중도층 지지 회복 부족, 막말 논란, 공천 실패, 중앙당의 전략부재,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명확한 입장 부족, 청년층의 외면 등이 언급된다. 결국 지난 대선에선 이준석 전 대표를 내세워 청년에 호소하는 등 일시적으로 이를 해소했지만 2년 만에 다시 과거로 회귀한 셈이다.

 

건강한 당정관계 수립 실패와 권력에 쓴소리할 수 없는 보수당 분위기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보수의 연패를 구조적 문제로 봤다. 윤 실장은 “여러 구조적 문제가 있다”며 “이번 총선은 윤석열 대표의 캐릭터의 문제였다. 정치 구조가 윤 대통령을 낳은 것일 수 있다”고 해석했다. 그는 “당이 수도권에서 의석이 줄어들고 영남이 강화됐다”며 당 지형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윤 실장은 “서울·경기에 패한 곳을 분석해보면 적은 표차가 많다“며 “이런 곳은 이념보다 대통령의 국정운영 태도, 권위주의적인 행태에 실망한 사람들”이라고 봤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보수의 우위가 무너졌다기보다 이번 선거는 윤석열 대통령에 반대하는 보수들의 투표 결과”라며 “이제라도 당이 용산과 거리 두기를 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보수 입장에서도 정권 재창출을 위해 새로운 묘수 마련에 돌입할 것이라는 게 신 교수의 예상이다.

 

패배주의에 빠진 당내 분위기도 문제다. 국내 한 여론조사기관 전문가는 “선거마다 여당의 의석 목표치가 내려가고 있다”며 “과반(151석 이상) 저지에서 이번에는 개헌 의석(200석) 저지로 바뀌었다”고 꼬집었다. 실제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의 등장 이후 당내에서는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지지율 상승에 주요한 역할로 분석되기도 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관련 입장 발표를 한 뒤 승강기에 오르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과거와 달라진 유권자 지형에 비전을 제시하는 정책은 사라지고 네거티브만으로 표를 얻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번 총선에서 한 위원장의 연설문을 분석해 보면 정책이나 비전 대신 야당 대표와 막말·부동산 의혹에 휩싸인 후보들에 대한 비판에 치중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 때문에 여당은 전체 인구의 절반이 모여 있는 수도권에서 표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인구 구조로 보면 보수 30%, 진보 30%, 중도 40% 구도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며 “이 중도 40%를 끌어오기 위한 전략을 펴야 하는데 선거를 거듭할 때마다 기존 보수 중에서도 극단에 있는 10%에 집중하는 경향이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이 전문가는 “과거 대선에선 다양한 생각을 가진 선거연합이 구성됐지만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를 내치고, 더 영남 중심으로 뭉치면서 외연 확장이 아닌 축소로 간 측면도 패인의 요인”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