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이유도 없이 90분 동안 따귀를 때렸다.” 조직폭력배 얘기가 아닙니다. 매력적인 외모, 뚜렷한 개성, 탄탄한 연기력을 인정받아 스타로 떠오르던 두 여배우가 연달아 학교폭력 논란에 휘말렸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상간녀다, 아니다. 환승연애다, 아니다. 셀프 열애설이다, 아니다. 요즘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스캔들이 터져 나옵니다. 학폭, 마약, 불륜, 탈세, 음주운전, 갑질 등으로 연예인의 이미지가 추락하면,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인 사람들이 있는데요. 첫 번째는 당연히 팬들이고, 두 번째는 해당 연예인이 소속된 회사의 주주들이고, 세 번째는 해당 연예인이 나오는 광고의 광고주들입니다.
요즘 소비자들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불미스러운 일을 저지른 연예인이 광고에 나오면, 신속하게 SNS에, 인터넷 커뮤니티에, 광고사 홈페이지에 ‘꼴 보기 싫다’는 글을 올립니다. 해당 사안이 범죄이거나 그에 준할 정도로 심각할 경우, 불매 운동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광고사들은 이런 문제에 있어 누구보다 예민합니다. 모델 관련 루머가 터지면 광고사들은 허둥지둥 계약을 해지하고, 광고판과 현수막을 내리고, 홈페이지 메인 화면을 바꾸느라 비상이 걸립니다.
앞으로 발생할 매출 하락은 어떻게 막았다지만, 이미 생긴 손해까지 메울 수는 없습니다. 수십억원의 돈을 들여 만든 광고 캠페인을 영영 쓸 수 없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해당 브랜드나 기업의 이름이 스캔들과 연관되어 수백 번, 수천 번 언급되고 보도되면서 경제적으로 환산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이미지가 추락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분노한 광고주들은 소송에 나섭니다.
잠시 이야기가 샜는데요. 이런 유래로 만들어진 품위 유지 조항은 분명히 법적 효력이 있고, 이를 위반한 당사자는 계약 상대방에게 채무불이행에 대한 손해배상을 해주어야 합니다. 최근에는 광고모델 계약뿐만 아니라 연예인이나 유튜브 크리에이이터와 기획사 간 전속계약, 방송사와의 프로그램 출연 계약, ‘일타강사’라고 불리는 유명 학원 강사들의 강의 계약에도 이 조항이 들어가곤 합니다. 그렇다면 손해배상액은 어떤 기준으로 계산할까요? ‘이미지 추락’이라는 추상적인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기는 매우 까다롭습니다. 그래서 보통 위약금은 ‘계약금의 몇 배’, ‘몇 개월분 광고대금’ 이런 식으로 미리 약정해놓고 청구하고, 법원에서는 너무 많다고 판단되면 적당히 감액하는 판결을 내려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학창 시절 학폭했던 게 밝혀진 경우에도 광고 위약금을 물까요? 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놀랍게도 ‘NO’입니다. ‘남자친구 가스라이팅’과 ‘중학교 일진 학교폭력’, 그리고 ‘학력위조’ 논란이 일었던 배우 A와 광고주인 유산균 제품 업체의 민사소송이 판례가 되었는데요. 배우 A는 광고주에게 수억원의 위약금을 물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는 잘못된 정보입니다. 법원에서는 배우 A의 각종 논란이 ‘전부 계약 체결 전에 있었던 일이고, 이를 계약 교섭 과정에서 밝히라고 강요하는 것은 헌법상 기본권 침해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위약금 청구를 기각하였습니다. 그 대신, 배우 A와 광고주 사이의 계약은 신뢰 관계가 깨져 도저히 유지될 수 없다고 하면서, 남은 계약기간만큼의 모델료인 2억5000만원 상당을 반환하라고 판결한 것입니다.
손해배상이든, 모델료 반환이든, 집 한 채 값이 왔다 갔다 한다는 건 변함없습니다. 연예인이 성직자도 아닌데 윤리까지 강제하는 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싶다가도, 결국 이 모든 게 자본의 논리라는 걸 생각하면 어느 정도 납득하게 됩니다. 스파이더맨 노웨이 홈의 명대사가 떠오르네요. Great power comes with great responsibity. 높은 계약금에는 많은 의무가 따라오나 봅니다.
서아람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