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서랍 깊숙한 곳을 뒤지다가 흰 종이로 싸인 얇은 책 한 권을 발견했다. 펼쳐보았더니 오래전 세상을 떠난 후배의 유고 시집이었다. 그랬다. 표지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파서 보지 않으려고 종이로 싸두었었다. 그것도 모자라 나중에는 책을 아예 서랍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었다.
방바닥에 주저앉아 시집을 펼친다. 깊은 밤이고 사방이 고요하고 정신도 맑지만 나는 시에 집중하지 못한다. 한 줄 읽고 후배의 얼굴을, 다시 한 줄 읽고 그의 목소리를 떠올린다. 페이지를 넘긴다. 팔인용 방. 제목을 보자마자 나는 순식간에 저 까마득한 어느 날 후배와 마주 앉았던 밥집에 가 있다. 누나, 내가 어제 고시원에 방 보러 갔었는데 말이야. 보통 고시원은 다 일인실이잖아. 근데 어제 총무가 보여준 방은 글쎄 팔인실인 거야. 이층 침대가 네 개 있는데 거기 일곱 명이 누워 있더라고. 문이 열리자마자 그 일곱 명이 나를 노려보는데…… 어휴, 나 그거 시로 쓸 거야. 후배는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시를 읊조린다. 나는 괜한 참견을 한다. 일곱 명이 나를 본다, 말고 열네 개의 눈동자가 나를 본다, 이게 낫지 않을까? 후배가 웃는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아무 말도 하지 않을 텐데. 아니, 어서 밥부터 먹으라고 할 텐데.
김미월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