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스트 랜드/올리버 프랭클린 월리스/ 김문주 옮김/ 알에이치코리아/2만4000원
새벽배송된 주문 상품에서 플라스틱 포장지를 겹겹이 벗겨 알뜰하게 분리수거하면서, 멀쩡하지만 입기 싫은 옷을 수거함에 넣으면서 우리는 죄책감을 던다. 적어도 쓰레기를 막 버리지는 않았다는. ‘이게 제대로 재활용될까, 헌 옷들은 어디로 갈까’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깊이 고민할 시간은 없다. 사는 건 늘 바쁘고, 쓰레기는 끊임없이 우수수 쏟아진다.
신간 ‘웨이스트 랜드’는 현대인이 내다 버린 후 바로 잊어버리는 쓰레기들이 어떤 운명을 맞는지 추적한다. 쓰레기 대부분은 세계의 귀퉁이로 흘러들어 지구를 병들게 하고 있었다.
영국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인도 뉴델리 가지푸르 쓰레기 매립장을 찾아간다. 8만평이 넘는 땅에 65m 높이로 쓰레기가 쌓인 거대한 산이다. 멀리서 보면 산 중턱을 검은 구름이 감싸고 있다. 가까이 가면 이 구름이 새떼임을 알게 된다. 시베리아 솔개, 이집트 독수리 수천 마리가 쓰레기를 뒤지기 위해 산허리를 빙빙 돌고 있다.
가나의 칸타만토는 이런 중고 의류들의 종착지로, 서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중고 의류 시장이다. 1980∼1990년대 서양 자선단체들은 모금과 구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아프리카에 옷을 쏟아부었다. 싸구려 물건이 쇄도하자 경쟁력 없는 아프리카 직물제조 업계가 완전히 무너졌다. 1975∼2000년 사이 가나 직물무역업 종사자는 75%나 감소했다.
패스트패션의 유행으로 칸타만토에 들어오는 의류의 질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이곳에 도착한 의류의 40%, 주당 600만벌의 의류는 곧장 쓰레기가 된다. 이 지역의 폐기물 수거 책임자인 솔로몬 노이는 “피 묻은 속옷이랄지, 병원 강당에서 나온 쓰레기라니. 그 누가 사겠어요?”라고 반문한다.
직물 폐기물이 최근 몇 년간 무섭게 쏟아지면서 근처 매립장은 두 손을 들었다. 30∼40년은 걸려야 채워질 매립장이 3년도 못 돼 다 찼다.
화재로 이 매립장은 폐쇄됐고, 이후 옷 쓰레기들은 ‘그냥 투기장’ 수준인 다른 매립장으로 갔다. ‘쓰레기 투기장’에서 나온 침출수는 강과 지하수를 오염시켰다. 수돗물을 그대로 마실 수 없어지자 병에 든 생수를 사야 했다. 생수의 플라스틱은 배수로를 막고, 배수로가 넘치니 또 다른 쓰레기 위기가 벌어졌다.
가나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대책은 중고 수입을 금하는 것이다. 2016년 케냐, 르완다 등 동아프리카 공동체는 섬유산업을 소생하기 위해 중고 의류 수입을 금하려 했다. 미국은 이 조치가 미국의 일자리를 위협한다며 무역제재를 가하겠다고 했다.
저자는 이 같은 ‘쓰레기 제국주의’를 전하며 “(헌 옷) 기부는 구원을 위함이 아니다. 기부는 우리 대부분에게 너무나 현대적인 골칫거리, 즉 물건을 너무 많이 갖고 있다는 문제를 다른 누군가에게 떠넘기는 간단한 방법일 뿐”이라고 꼬집는다.
책은 이외에도 코카콜라나 브리티시 페트롤리엄 같은 기업들이 쓰레기 문제에 대한 비난을 피하려 어떻게 교묘하게 재활용을 장려했는지 고발한다. 또 각국이 쓰레기 재활용률을 부풀리는 방법, 삼각형 화살표와 숫자로 이뤄진 플라스틱 재활용 라벨(국제 수지 식별 코드)이 ‘쓰레기’인 이유를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