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 날아가 ‘쾅’…수천대씩 만드는 자폭드론, 가격도 위력도 ‘역대급’ [박수찬의 軍]

무인 기술과 첨단 정보통신 기술이 전쟁의 패턴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순항미사일처럼 수천㎞를 비행해서 지상 표적을 타격하는 드론이 그 주인공이다. 

 

과거에는 미국이나 포클랜드 전쟁 당시 공중급유기와 폭격기를 동원해 포클랜드 제도를 공습한 영국, 시리아와 레바논을 수시로 폭격하는 이스라엘 등 일부 국가만이 장거리 타격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주택가에 러시아군이 쏜 샤헤드-136 자폭드론이 날아오면서 충돌, 화염을 뿜어내고 있다. 게티이미지

하지만 무인 기술과 4·5G 네트워크를 비롯한 민간용 정보통신 기술이 결합하면서 새로운 비대칭 전쟁 기술이 탄생했다. 

 

최근 이란이 이스라엘에 쐈던 샤헤드-136 드론처럼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순항미사일에 맞먹는 자폭드론을 싸게 대량생산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비정부 무장집단도 장거리 자폭드론으로 멀리 떨어진 표적을 타격할 수 있게 됐다. 군사·경제력 격차를 뒤집는 비대칭 전쟁이 한층 뚜렷하게 나타나는 셈이다.

 

◆싸고 많이 만들면 그게 억제력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갈등은 장거리 자폭드론의 중요성을 부각한 계기였다. 우크라이나는 서방이 러시아 본토 공격용 무기를 공급하지 않자 장거리 자폭드론을 개발, 러시아 내륙 군사·산업시설을 타격했다.

 

초기엔 옛소련 정찰드론 Tu-143을 자폭드론으로 개조, 염가형 순항미사일처럼 만든 것이 쓰였다. 이 드론은 1000㎞를 비행해 러시아 내륙을 공격했다.

 

우크라이나 엔지니어들이 UJ-22 자폭드론을 테스트하고 있다. AP통신

우크라이나는 올해 장거리 정밀타격이 가능한 자폭드론 수천 대를 만들 예정이다. 내륙의 정유소와 공장, 비행장을 타격해 전선의 러시아 방공망을 후방으로 재배치하도록 강요하고 러시아인들에게 전쟁의 실체를 알려주려는 의도에서다.

 

2년 전에는 없었던 능력이지만, 우크라이나는 단기간에 장거리 자폭드론 생산 기업 10개를 육성했다. 국가가 벤처 투자자 역할을 하고 드론 시장 규제를 급속히 완화한 결과다.

 

우크라이나의 장거리 자폭드론은 값싸고 대량생산이 가능하다.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나 장비는 모두 활용된다.

 

우크라이나는 최근 러시아 타타르스탄 옐라부가의 알라부가 경제특별구역에 장거리 자폭드론 공격을 했다. 이란산 샤헤드 자폭드론 생산 공장이 가동중인 곳이다.

 

이때 사용된 드론은 우크라이나산 2인승 경비행기 ‘A22’를 개조한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1600여대가 생산된 A22는 러시아에서도 100여대가 팔린 민간 항공기다.

 

단순하고 신뢰성이 높은 설계 덕분에 간단한 개조만으로도 드론을 만들 수 있다. 가격이 9만 달러(1억2400만 원)에 불과하고, 러시아에서도 사용중인 민간항공기라 비행 도중에도 러시아인들의 의심을 피할 수 있다.

 

AQ-400 자폭드론은 가구공장에서 만든 합판으로 동체를 만들고, 그 안에 소형 원동기 오토바이와 전자상거래로 입수한 자율비행제어칩과 GPS 수신기, 122㎜ 포탄을 탑재한다.

 

이를 통해 대당 1만5000달러(2000만 원)의 비용으로 750㎞ 떨어진 표적을 공격하는 자폭드론이 만들어진다.

 

우크라이나군이 사용하는 AQ-400 자폭드론들이 활주로에 놓여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최근 발견된 신형 자폭드론은 현지에서 쉽고 싸게 조달할 수 있는 재료만 쓰도록 설계됐다. 

 

동체는 6인치(15㎝) 산업용 플라스틱 배관으로 쓰고, 날개는 나무 골조에 알루미늄 막대로 지지대를 만든 뒤 열수축 필름을 씌운 형태다. 

 

알리익스프레스에서 1100달러(152만 원)에 파는 중국산 가솔린 엔진, 5리터 플라스틱 PET병 4개로 구성된 연료탱크, 민수용 GPS 수신기 등을 갖췄다. 

 

대당 가격은 최대 1만 달러(1380만 원)로 추정되며, 생산 인력은 2명이면 충분하다. 전용 작업장을 꾸리면 하루에 20대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재료를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구조가 단순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 드론이 소형 탄두를 탑재하면 200~300㎞를 날아갈 수 있다고 분석한다. 미국이 원조를 꺼려했던 에이태큼스(ATACMS) 지대지미사일과 비슷한 사거리다.

 

서방의 군용 자폭드론과 비교하면 성능은 형편없지만, 가격이 매우 저렴하고 생산이 쉬워서 한꺼번에 대량의 장거리 자폭드론을 투입할 수 있다. 양이 곧 질이 되어버린 셈이다.

 

이란의 아라쉬 드론이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의 사진 앞을 지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란도 샤헤드-136 자폭드론을 사용한다. 최근 이스라엘에 대한 이란의 대규모 공습과정에서 탄도·순항미사일과 함께 샤헤드-136이 투입됐다. 

 

샤헤드-136은 러시아에 수출됐다. 러시아는 이를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량 투입해 우크라이나인들을 공포에 빠뜨렸다. 예멘 후티 반군도 샤헤드-136으로 사우디 등을 공격하면서 장거리 타격력을 과시했다.

 

샤헤드-136은 30~50㎏의 탄두를 싣고 2000㎞를 날아간다. 민수용 장비를 대거 사용하며 대량생산이 쉽다.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가 지난 2월 초 해킹 집단이 유출한 러시아의 샤헤드-136 생산 관련 문서를 분석한 것에 따르면, 공장을 24시간 가동하면 샤헤드-136을 한 달에 310대 만들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량생산할 경우 대당 가격은 1만 달러(1380만 원)까지 낮아진다. 성능이 부족해도 대량으로 발사하면 충분한 위력을 낼 수 있다.

 

러시아는 지난해 11월 이란과 맺은 계약에 따라 타타르스탄 알라부가 경제특구에 공장을 만들었다. 이 공장에선 2025년 9월까지 샤헤드-136 6000대를 생산할 계획이다. 

 

그만큼 샤헤드-136의 구조가 단순하고 제작비가 저렴해서 단기간 내 막대한 물량을 만들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한반도 ‘드론 전쟁’ 대비하려면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등장한 초저가 장거리 자폭드론은 한반도에도 상당한 파장을 몰고 올 잠재력이 있다.

 

북한은 예전부터 무인기(드론)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현재 자폭드론을 포함해 300~1000대까지 운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2014년 서울과 백령도 등에서는 추락한 북한 무인기가 발견됐으며, 2017년에는 경북 성주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기지를 무인기로 촬영했다. 2022년엔 서울 용산 대통령실 인근까지 북한 무인기가 침투했다.

 

무인 기술에 관심이 높은 북한으로선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쓰이는 초저가 장거리 자폭드론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와 이란이 만들 수 있다면, 북한도 충분히 가능하다.

 

우크라이나와 이란의 초저가 장거리 자폭드론 제작에 사용되는 구성품 중 상당수는 중국에서 들여오는 것이다. 

 

중국과 지리적으로 거리가 먼 우크라이나는 공급망 문제와 장비 조달 속도 등으로 인해 부품 국산화를 추진 중이다. 중국과 이웃인 북한은 중국에서 구성품을 조달하는 게 훨씬 쉽다. 설계 및 최종 조립 능력만 있으면 자폭드론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망도 초저가 자폭드론 제작을 저지하기는 어렵다. 구성품과 재료 대부분이 민수용이다. 최종 사용자를 위조하면 추적도 쉽지 않다. 

 

가내수공업 수준의 공장에서도 대량생산할 수 있어서 한·미 연합군이 동향을 감시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북한군 무인기가 평양 김일성광장을 지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북한이 유사시 단기간에 대량의 초저가 장거리 자폭드론으로 한반도 중·남부의 산업시설 등을 타격한다면 한·미의 전쟁 수행은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 

 

조잡하게 만들어진 자폭드론의 위력은 약하다. 하지만 수㎏의 폭발물을 실은 자폭드론이 석유저장고에 돌진한다면 어떻게 될까. 

 

자폭드론 탑재 폭탄과 연료가 화염병처럼 작동하면서 화재가 발생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석유저장고들이 타격을 받으면 전쟁 수행이 어려워진다.

 

병사는 식량 없이도 하루쯤 버틸 수 있지만, 전차와 장갑차는 기름이 없으면 1초도 움직이지 못한다.

 

북한이 자폭드론을 대대적으로 사용할 가능성에 대한 대비가 필요한 이유다.

 

우선 방어적 측면에서 혁신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기존 방공망을 활용할 수도 있지만, 방공망은 북한군 방사포와 미사일, 헬기, 전투기 등의 공격을 저지해야 한다.

 

중요 시설 방어를 위한 대(對)드론 체계와 레이저 대공무기 등이 있지만, 전국에 산재해 있는 산업 및 민간 거주지역까지 방어하기는 어렵다. 

 

우크라이나의 경우에는 휴대전화 네트워크로 드론을 탐지한다. 영국 텔래그래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방공통제 네트워크인 ‘비라주’는 40개에 달하는 개별 센서 네트워크를 이용한다. 

 

특히 음향 센서로 주변에서 발생하는 비정상적 소리를 듣고, 인공지능(AI)을 이용해 해당 소리가 미사일이나 자폭드론인지 식별한다.

 

이를 위해 비정부기구 스카이포트리스가 제작한 센서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 휴대전화가 상자에 담긴 채 우크라이나 최전선 일대에 배치돼 있다. 

 

이 기기는 공중에서 날아드는 표적을 감지하고자 늘 가동된다. 녹화 기능도 탑재해 지역 휴대전화 네트워크를 거쳐 정보를 중앙체계로 다시 전달해 위협을 알린다.

 

이같은 방식은 레이더가 보급되기 전인 1920~1930년대에 쓰였던 방공기술이다. 다만 그때는 라디오를 이용했다. 송신기와 수신기 사이로 지나는 물체에 의한 전파신호를 수신기가 받는 형태로 발견을 했다.

 

머신러닝을 적용한 ‘즈부크’라는 센서는 초소형 컴퓨터를 사용해 고품질 영상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미사일과 드론을 각각 9.7㎞, 4.8㎞ 거리에서 인식할 수 있다.

 

주변에서 흔히 사용하는 휴대전화를 이용해서 드론 탐지 및 감시를 진행하는 것은 기존 방공망의 부담을 덜어주면서 적군의 드론 공격 성공 확률을 떨어뜨리는 효과가 있다.

 

이란의 드론들이 지난 17일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열병식에 참가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드론작전사령부에서 운용할 자폭드론을 대량 비축하는 것도 중요하다. 우크라이나와 이란의 초저가 장거리 자폭드론이 위력적인 것은 단기간 내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는 점이 컸다.

 

이미 판매중인 장비나 재료를 조합해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저렴하게 자폭드론을 만든다면, 사전에 충분한 수량을 비축할 수 있다. 공급에 문제가 발생할 위험에 대비, 드론의 부품 국산화도 빠르게 진전시켜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드론 전문가 집단을 충분히 양성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전쟁중인데도 단기간에 다양한 종류의 드론을 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엔지니어들이 충분히 있었기 때문이었다.

 

드론 전문가를 사전에 확보하면, 유사시 긴급하게 제작할 필요가 있는 드론을 쉽게 만들 수 있다. 

 

우크라이나처럼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와 구성품을 조합해 자폭드론을 만든다면, 전쟁 양상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신형 드론 도입보다 전문가 양성이 더 급한 이유다.

 

싸구려로 인식됐던 초저가 장거리 자폭드론은 이제 전장의 판도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위력이 막강해졌다. 누구나 쉽게 생산할 수 있는 초저가 장거리 자폭드론은 한반도에도 충분한 영향력을 드러낼 잠재력을 지녔다. 값이 싸거나 모양이 볼품없다고 무시할 무기가 아니다. 지금부터 군 당국이 대응책 마련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