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파트 경비원 A씨는 근로계약서에 없는 부당한 업무지시에 시달려 왔다며 노동청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 아파트 관리소장은 A씨에게 사적인 빨래를 맡기고 휴게시간에도 청소 등의 업무를 지시했다. 그러나 A씨는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받지 못한 채 계약만료를 통보받았다.
아파트 경비원 등 경비·보안·시설관리·환경미화 노동자들이 A씨처럼 여전히 ‘갑질’에 시달리며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21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지난해 1월1일부터 올해 4월15일까지 경비·보안·시설관리·환경미화 노동자들이 보내온 메일 제보 47건을 분석해 주요 사례를 공개했다.
이들은 주로 관리소장, 입주민, 용역회사 직원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고 밝혔다.
한 경비원은 “관리소장의 끝없는 갑질과 폭언, 부당업무 지시 때문에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다”며 “소장은 고압적인 자세로 업무를 지시하고, 툭하면 직원들을 모아놓고 ‘내보낸다’며 갑질을 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신고도 해봤지만 나 혼자 계약기간 종료로 잘렸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경비원은 술을 마시고 전기실에 들어 온 입주자 회장을 말리다 “인간성이 좋지 못한 직원은 잘라야 한다”는 폭언을 듣고 결국 퇴사했다.
직장갑질119는 이들 대부분이 ‘초단기 계약’을 맺는 탓에 괴롭힘에 취약한 구조에 놓이게 됐다고 설명했다.
2019년 발간된 ‘전국 아파트 경비노동자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 94%가 1년 이하의 단기 계약을 맺고 있었으며, 3개월 계약도 21.7%에 달했다. 이 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침묵하거나, 목소리를 냈다가 근로계약이 종료돼 버리는 경우가 잦다.
원청업체 갑질도 문제다. 괴롭힘 가해자로 주로 지목되는 관리소장은 대부분 아파트 등의 원청 직원이다. 현행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 따르면 원청 가해자는 ‘직장 내’ 괴롭힘 행위자로 인정되지 않는다. 원청도 가해자를 대상으로 조사나 징계 등 후속 조치를 할 의무가 없어 사실상 대처가 어렵다.
임득균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다단계 용역계약 구조에서 경비노동자들은 갑질에 쉽게 노출된다”며 “공동주택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갑질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근로기준법 내 직장 내 괴롭힘의 범위를 확대하고, 단기 계약 근절·용역회사 변경 시 고용승계 의무화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19일은 경비원 노동조합이 아파트 측의 일방적인 해고 통보에 맞서 복직 투쟁을 이어간 지 100일째 되는 날이었다.
이들은 지난해 3월14일 서울 강남 한 아파트 경비원 박모씨가 관리소장 갑질을 호소한 뒤 사망하자 노조를 만들고 가해자로 지목된 관리소장의 사과와 해임을 요구해 왔다. 그러자 해당 아파트는 같은 해 12월31일 경비원 76명 중 44명에게 계약만료를 통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