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환경권 침해" vs "현실 반영한 정책"

헌재, 기후소송 4년 만에 변론

청구인들, 정부의 소극 대응 지적
“온실가스 40% 감축 계획 불충분
2031년~2050년 목표 설정 안 해”

정부, 기후변화 종합적 접근 강조
“제조업 중심 韓, 타국과 비교 불가
탄소배출 감축 목표 초과달성 중요”

정부의 부실한 기후위기 대응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지를 가리는 ‘기후소송’이 헌법재판소에서 처음 열렸다. 청구인들은 정부의 소극적 대응이 환경권 등을 침해한다고 주장했고, 정부는 현실적인 대책을 펴고 있다며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맞섰다.

 

헌재는 23일 청소년과 시민단체 등이 옛 녹색성장법과 탄소중립기본법 등에 대해 제기한 위헌확인 사건의 첫 변론기일을 열었다. 이번 변론은 청소년 단체인 ‘청소년 기후행동’이 2020년 3월 헌법소원을 처음 제기한 뒤 4년 만에 열렸다. 영유아 부모와 시민단체 등이 유사한 취지로 제기한 3건의 청구도 함께 변론이 이뤄졌다.

청소년기후소송, 시민기후소송, 아기기후소송, 탄소중립기본계획소송 관계자들이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기후 헌법소원 첫 공개변론 공동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기후 위기 대응 부실을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소송의 심판 대상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 등을 정한 녹색성장법과 탄소중립기본법 및 시행령 등 조항이다. 해당 조항은 2030년까지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까지 감축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청구인들은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이 충분하지 않아 환경권과 같은 기본권이 침해된다며 이번 소송을 제기했다. 파리협정 등 국제조약에 따라 정부가 지구 평균 기온의 상승 수준을 1.5도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현재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이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유엔 산하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보고서가 정한 ‘탄소예산’(잔여 탄소배출허용총량)의 관점에서도 불충분하다는 게 청구인 입장이다.

 

청구인 측 대리인은 이날 “기후 변화로 인한 산불, 폭우, 폭염, 태풍 등 재난과 재해는 국민의 생명권과 건강권, 재산권을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침해하고 있다”며 “입법과 행정, 재판을 통해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게 법적 의무”라고 했다.

그러면서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40%로 정한 것이 △탄소예산 관점에서 현저하게 불충분하고 실효성이 부족한 점 △2031년 이후 탄소중립 목표 연도인 2050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설정하지 않은 점 △온실가스 감축목표의 집행을 보장하는 방법도 규정하지 않거나 불충분하게 규정한 점 등을 문제 삼았다. 온실가스 배출 목표를 하한선만 정하고 구체적인 사항을 정하지 않은 것에 대해선 ‘포괄위임금지원칙’ 위배라고도 지적했다. 청구인 측 참고인으로 나온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도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이 보다 적극적이어야 한다면서 재생에너지 시설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 측은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문제가 없고 기후 변화에는 종합적인 접근이 중요하다고 반박했다.

 

구체적으론 △기존 목표보다 대폭 상향한 값이라는 점 △한국이 제조업 중심의 경제 구조라 경제·산업계에서 부담이 큰 점 △각국의 실정에 맞게 감축 기준을 정할 수밖에 없어 주요 국가와 단순 비교할 수 없다는 점 등을 들어 ‘40% 감축’ 목표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감축 목표를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선 “규율할 대상이 지극히 다양하고 수시로 변화하는 성질이 있어 위임의 구체성이나 명확성 요건이 완화된다”고 설명했다.

어린이의 바람… “오늘이 기후대응 시작점 되길”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기후 헌법소원 공개변론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가 ‘오늘이 기후 대응 시작점이 되길’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이날 헌법재판소는 ‘기후 소송’에 대한 첫 공개 변론을 진행했다. 뉴스1

정부 측 대리인은 “탄소배출 감축은 높은 목표 수립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계획대로 또는 목표를 초과 달성해 이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기후 변화 대응은 감축과 적응에 대한 종합적인 접근이 중요하다”고 했다.

 

변론에 앞서 이종석 헌재소장은 “기후소송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다”며 “재판부는 사건의 중요성과 국민적 관심을 고려해 충실히 심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헌재는 추가 기일을 열고 양측이 신청한 또 다른 참고인들의 진술을 들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