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와우리] 한국의 안보 포트폴리오와 ARF

냉전 종식후 1994년 출범 ARF
아세안 지역안보 협력 성과도출
18년만에 다시 한국서 회의개최
변화한 안보환경 맞춘 대안 내야

냉전이 종식되고 국제사회에 안정과 평화가 확산될 것이라는 유포리아(euphoria)적 기대감이 충만하였다. 강대국 중심의 적대적 동맹체제가 허물어진 자리에 각 지역에서 자생적인 안보협의체들이 등장했다.

아시아에서도 1992년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을 중심으로 지역 안보 협력을 논의하기 시작하면서 1994년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이 출범했다. ARF에는 아세안 10개국과 더불어 이들의 대화 상대국과 주요 파트너 국가까지 총 27개국이 참여한다. 남·북한,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EU, 인도, 파키스탄 등이 포함된다.

최윤정 세종연구소 외교전략센터장·ARF EEPs 위원

ARF의 출범은 지역 안보에서 의미 있는 전환점이었다. 당시만 해도 냉전 시대의 적대적 대립과 집단 방어 논리 속에서 상호 불신과 의심이 팽배했다. 그런데 ARF는 지역의 정치·안보 관심사와 우려에 대한 건설적인 대화와 협의를 촉진하고, 신뢰 구축과 예방 외교, 나아가 분쟁 해결까지 단계별 역할을 상정했다. ARF가 합의 기반 의사 결정, 비공식적 접근, 자발적 준수와 같은 새로운 국제 협력의 모델을 도입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에 더하여 ARF는 안보와 평화 분야의 지식과 전문성을 결합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ARF를 지원하는 ARF 전문가·저명인사(ARF EEPs) 그룹을 설치한 것이다. ARF EEPs는 27개 ARF 회원국의 외교·안보 분야 전문가를 참여시키고 아세안과 비아세안 회원국이 공동의장을 맡아 회의를 개최한다. 회의 결과는 ARF 외교장관회의에 제출하여 정책 결정에 반영하는 통로를 두었다. 그리고 첫 회의를 2006년 제주도에서 개최하였다.

ARF는 우리에게 중요한 안보협의체 중 하나다. 한국은 그간 ARF를 한국 외교 전략을 발표하거나 실천하는 장으로 삼았다. 예를 들어 1994년 첫 ARF 회의에서 김영삼정부는 동북아안보대화(NEASeD) 구상을 제안했고, 2000년 북한을 ARF 회원국으로 초청하였으며,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ARF 계기에 남북 외교장관 회담을 가졌다. 2004년부터 2023년까지 ARF 의장 성명을 통해 여러 차례 한반도 비핵화 지지 표명과 북한의 안보리 결의 준수에 대한 촉구를 이끌어냈다.

ARF는 북한이 참여하고 있는 유일한 다자안보 협의체이기도 하다. 금년 7월 개최 예정인 ARF 외교장관회의에는 최선희 북한 외무상의 참석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편 창립 30년이 된 ARF는 이제 근본적인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유포리아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다. 미국의 고립주의와 보호주의가 강화되면서 국제질서의 재편 속도는 한층 빨라질 전망이다. 지역 안보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시점이다.

국제질서의 변화 속에서 지역 안보협의체도 경쟁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에 ARF도 아세안확대국방장관회의(ADMM-Plus), 동아시아정상회의(EAS) 등 자체 발원한 협의체와 중복 우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 중·러가 주도하는 상하이협력기구(SCO), 아시아교류·신뢰구축회의(CICA) 그리고 미국이 주도하는 쿼드(QUAD), 오커스(AUKUS), 한·미·일, 미·일·필리핀과 같은 삼각협력 등 역외 국가가 설립하는 협의체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국제질서의 향방이 묘연한 상황에서 한국도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하여 안보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한국 안보의 포트폴리오에서 ARF의 역할도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ARF의 미래를 논의하는 전문가 그룹의 논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한국은 2006년 1차 회의 개최 이후 18년 만에 4월 25∼26일 이틀간 서울에서 ARF EEPs 회의를 개최한다. ARF EEPs 의장국으로서 창의적인 대안이 나올 수 있도록 이들의 논의를 정부 차원에서 적극 지원해야 한다. 관성에 따라 할 수 있는 것은 남아 있지 않다.

ARF가 한국 안보에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한국의 결심은 그 답의 일부가 될 것이다.

 

최윤정 세종연구소 외교전략센터장·ARF EEPs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