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가는 민심을 얻고자 한다. ‘민심(民心)이 천심(天心)’이라는데 민심은 뭘까. 혹자는 바람이나 뜬구름과 같다고 한다. 하루아침에 바뀌는 게 민심이다. 4·10 총선에서 특정 후보 지지율이 요동친 것을 보지 않았던가. 손에 잡힐 듯하면서도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정치 9단 김종필은 “정치는 허업(虛業·헛수고)”이라고 말했으리라.
그래도 민심은 큰 강물과 같다. 급류가 있고 소용돌이도 치지만 장강을 이뤄 도도히 흐른다. 재주복주(載舟覆舟),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뒤집기도 한다. 민심을 제대로 읽으면 배가 뜨고, 잘못 읽으면 뒤집힌다. 21대 총선에서 범야권에 192석을 내준 국민의힘의 대패는 민심을 못 읽어서다. ‘당심이 민심’이라는 궤변으로는 이길 수 없는 선거였다.
179석으로 20·21·22대 3연속 제1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은 득의만만하다. 총선에서 확인된 정권심판론에 기대어 연일 강경 목소리를 내고 있다. 총선 민심을 들어 백지수표를 들이내민다. 국회의장에 법사위원장, 아예 17개 상임위원장을 독식하겠다고 한다. 오죽하면 야권 정치 원로인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이 “총선 민심에 그렇게 쓰여 있었나”라고 했을까. 그런데도 “총선 민의를 반영하는 국회의장이 되겠다”면서 정파적 국회 운영을 공언한다. 입법 독주에 거리낌이 없다. 첫 여야 영수회담 청구서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민주당 논리대로라면 2년 전 대선 민심은 윤석열정부에 만능 키를 쥐여 준 것 아닌가. 보수 정권을 탄핵하고 5년간 국정을 이끈 민주당 정권에 대한 심판이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의 9차례 법률안 거부권 행사를 국회 무시라고 비판할 일만도 아니다. 오히려 거대 야당이 대선 민심을 무시한 채 입법 폭주한 셈이 된다.
선거로 드러나는 민심은 무서울 정도로 적확하다고 한다. 집단지성의 힘이다. 대선은 여권, 총선은 야권의 손을 들어 줬다. 다음달 10일 집권 3년 차를 맞는 윤석열정부가 5년 내내 여소야대 상황을 맞는 건 헌정 사상 초유다. 독선과 불통 이미지의 대통령을 견제해야 한다는 민심이 발현된 결과다. 결국 서로 협치하라는 뜻이다. “협치라는 단어를 머릿속에서 지워라”라는 선동은 민심 오독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