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 등에 관한 특별법’(고준위 방폐물법)을 5월 마지막 21대 국회에서 처리하기로 잠정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당 원내대표 간 협상이 이뤄지지 않아 실제 법안 통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하나 특검법으로 대치 정국이 형성된 상황에서 정치권이 관련법 처리에 공감대를 이뤘다는 것만으로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관련 법안은 2021년 9월 발의된 후 지난해 12월까지 법안소위에서 10차례 넘게 다뤄졌지만 원전 내 폐기물 저장시설 용량 등에 대해 여야는 이견을 드러냈다. 저장시설 용량의 기준을 원전 확대 입장인 여당은 ‘원자로 운영 허가 기간의 폐기물 발생 예측량’으로 하자고 했고, 탈원전 기조인 야당은 ‘설계 수명 중 폐기물 발생 예측량’이 돼야 한다며 맞섰다. 퇴임을 앞둔 한덕수 국무총리가 중재자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야당이 요구한 풍력법을 함께 처리하는 조건으로 의견 일치를 봤다고 한다. 사업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해 풍력발전 보급을 확대하는 내용의 풍력법은 문재인정부 때인 2021년 5월 민주당 주도로 발의됐으나 국민의힘이 처리에 미온적이었다. 이번에 정치권이 ‘주고받기’로 해법을 찾은 셈이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시설(방폐장) 설치 문제는 1978년 고리 1호기 상업운전 이후 40여년간 풀지 못한 국가적 난제였다. 원전을 주요 국정과제로 삼은 정부와 여당도 마찬가지다. 핵연료 물질 중 방사능이 적은 중·저준위 폐기물 처리시설은 경북 경주에 있지만, 고준위 폐기물은 원전 내 임시 저장시설에 보관돼 있다. 누적된 방폐물은 1만8000여t에 달한다. 문제는 이들 저장시설이 한빛 원전을 시작으로 2030년부터 순차적으로 포화 상태에 이를 것이란 점이다. 최근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를 비롯해 산·학·연 관계자 등 수백명이 절박한 심정으로 21대 국회에서 관련 법 제정을 촉구한 배경이다.
원전 강국이라면서 고준위 방폐장 하나 없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여야는 당파적·이념적 계산에 매몰되지 않고 국민과 국익을 우선하는 마음으로 문제 해결에 힘을 모아야 한다. 마침 방한 중인 클라우스 요하니스 루마니아 대통령이 어제 자국 석탄발전소 부지에 소형모듈원전(SMR)을 짓기 위해 경남 창원에 있는 두산에너빌리티를 찾아 SMR 제작 역량을 직접 확인했다고 한다. 방폐장 건립은 수출을 늘리며 비상하는 K원전에도 더 큰 날개를 달아 주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