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5'로 불리는 서울시내 주요 대형병원 다섯 곳 소속 교수들이 모두 정부의 의대증원 강행 추진에 반대하며 휴진을 결정했다.
정부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을 만류하며 "국민만 보며 의료개혁을 추진하겠다"고 의대 증원 강행 방침을 재확인했다.
정부와 의사들 사이의 강경 대치가 완화되기는커녕 악화일로를 걷는 가운데 이미 장기간 불편을 겪어온 환자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 한 총리 "오로지 국민 보며 의료개혁"…경찰, 의협 차기회장 압수수색
정부는 의대 교수들에게 환자 곁을 지켜달라고 호소하면서도 의사단체들이 요구하는 '의대 증원 백지화' 요구에는 응답하지 않았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의사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존경해 온 국민의 간절한 마음을 부디 외면하지 말기를 바란다"며 "교수가 현장을 지키고, 전공의가 병원에 돌아올 때 정부와 국민은 의사들의 목소리를 더 진중하게 경청하고, 더 무겁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총리는 "정부는 언제 어디서든 열린 자세로 의료계가 제시하는 안에 대해 충분히 소통할 준비가 돼 있다"며 "전공의와 의대생도 정부와 국민을 믿고 조속히 환자 곁으로, 학업의 장으로 돌아와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는 "각 대학의 내년도 신입생 모집 절차도 정부 발표대로 질서 있게 진행될 수 있도록 점검해 달라"고 지시했다.
한 총리는 "정부는 오로지 국민과 환자만 보며 의료개혁을 실행하고 있다"며 "의료개혁은 우리 국민 모두를 위한 것이며, 이미 현재진행형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경찰은 이날 '전공의 집단행동'을 부추긴 혐의로 고발당한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의협) 차기 회장 당선인에 대해 그가 회장을 맡았던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마포구 사무실과 충남 아산에 있는 주거지에서 압수수색을 했다.
경찰은 임 당선인 등 의협 전·현직 간부들이 의대 증원에 반발하는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을 부추겨 의료법 등을 위반했다는 보건복지부의 고발장을 지난 2월 접수해 수사 중이다.
압수수색이 실시되자 임 당선인 측인 의협 회장직 인수위원회는 "명백한 정치적 보복이고 매우 치졸한 행위"라며 "임기 시작을 며칠 앞둔 당선인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은 분명한 의도가 있어 보인다"고 반발했다. 강경파인 임 당선인의 임기는 다음 달 1일부터다.
그는 "정부는 국민들 앞에서는 의료계와 진정으로 대화를 원한다고 하면서 임기가 공식적으로 시작하기도 전에 유일한 의사 법정단체인 의협의 당선인을 압수수색했다. 절대 납득할 수 없는 겁박"이라고 비판했다.
◇ 환자들, 휴진·사직 우려에 불안감 고조…정부에 "공염불만" 분통
'주 1회 휴진'을 예고한 병원들이 늘어나고, 사직서 효력이 발생하는 시기가 다가오면서 환자들의 불안과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날 대전 충남대병원 비뇨기과 앞에서 만난 보호자 오모(70) 씨는 "남편 비뇨기과 외래진료가 오늘이라 왔는데, 진료 못 받을까 봐 너무 걱정했다"며 "서너시간 기다림 끝에 교수님 보면 3분 내로 진료가 끝나는데, 솔직히 너무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유방암 수술을 받은 뒤 이날 퇴원 수속을 하고 있던 환자 조모(53) 씨는 "내년 3월까지 항암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간호사가 '금요일 외래진료 휴진' 이야기를 해주더라"며 "아픈 환자들이 기다리는 건 기본 서너시간인데, 막상 진찰받으러 가면 별다른 설명 없이 1분 만에 끝난다.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는 것을 이번에 입원하면서 느꼈다"고 말했다.
전북 익산 원광대병원의 보호자 대기실에서 뇌수술을 받는 아내를 1시간 넘게 기다리던 곽모(65) 씨는 "책임감 있게 환자들을 돌볼 것이라고 의사들을 믿는다"고 말했다.
지난달 간암 수술을 한 70대 어머니를 모시고 충북대병원을 찾은 채모(40대) 씨는 "아버지도 이 병원에서 이달 말 대장암 수술 일정이 잡혀 있다"며 "부모님 두 분의 수술과 진료 모두 별 탈 없이 예약되긴 했지만, 교수들이 실제로 병원에 나오지 않을까 봐 늘 조마조마하다"고 울상을 지었다.
환자단체는 정부에 사직 의대 교수들의 명단을 공개하고 의정 대치 상황을 해결하라고 촉구했다.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는 성명에서 정부가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한 것과 관련해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환자들은 갈 곳이 없는데 특위는 현 상황과 거리가 먼 정책적 논의만 진행하려고 한다"며 "특위에서 의·정 대치 국면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어떤 의미가 있겠나"라고 비판했다.
이 단체는 "전공의와 의대 교수 사직에 이은 '대학병원 주 1회 셧다운'으로 암환자와 가족들은 탈진했다"며 "정부는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 직접적 이해 관계자인 의료계가 빠진 특위를 복지부 입맛에 맞는 위원들로만 구성해 공염불 논의만 지속할 예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각 병원이 '셧다운'을 중단하도록 논의해야지, 돌아오지도 않는 전공의 수련 환경개선을 논의한다는 것이 과연 합당한 일인가"라며 "일선 교수진 사직 명단을 공개해 환자들이 치료계획을 세우도록 지원책을 마련하고, 사태 봉합을 위해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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