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안산의 원곡초등학교에서는 매주 토요일 또 다른 수업이 열린다. ‘토요 이중언어교실’이다. 전교생이 400여명인 원곡초는 전체 학생의 98%가 이주배경학생(자신이나 부모 중 한 사람 이상이 외국 국적, 결혼이민자 가정, 중도입국자 등)이다. 대부분이 두 가지 이상의 언어를 사용하는 학생인 셈이다.
통상 이주배경학생을 위한 언어 수업은 한국어 수업이지만, 원곡초는 구성원의 특성을 반영해 중국어와 러시아어도 가르친다. 단순히 이주배경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이들을 ‘한국화’하는 것을 넘어, 정체성도 지켜주려는 취지다.
수업은 원곡초에서는 ‘소수’인 비(非)이주배경학생과 학부모들이 외국어를 배울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학교는 이들을 위한 중국어 입문 교실을 개설하는 등 이중 언어 교육을 통해 이주배경학생과 비이주배경학생 모두 글로벌 인재로 키운다는 목표다.
이주배경학생이 다수를 차지하는 원곡초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 사회의 미래일 수도 있다. 저출생의 여파로 지난해 4월 기준 전국 유·초·중·고생(578만4000명)은 10년 전(698만6000명)보다 20% 가까이 줄었다. 최고치를 기록했던 1986년(1031만명)과 비교하면 반 토막된 규모다. 유·초·중·고생 수는 18년 연속 감소 중이다.
반면 이주배경학생은 통계 집계가 시작된 2012년 이후 계속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는 18만1000명으로, 2014년(6만8000명)보다 3배 늘었다. 이미 학생 30명 중 1명은 이주배경학생인 것이다. 지역에 따라 원곡초처럼 이주배경학생이 다수인 학교도 적지 않다.
현재 한국에서 태어나는 신생아 100명 중 6명은 다문화가정인 데다가 중도입국 청소년도 늘고 있어 이주배경학생 비율은 계속 증가할 전망이다. 이들을 지역사회 구성원으로 키우는 것은 한국사회의 중요한 과제지만, 이주배경학생은 학업중단율이 높고 대학진학률(2021년 기준 40.5%)도 전체 학생(71.5%)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다. 전문가들은 이주배경학생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등 중장기적 교육정책을 세워야 할 때라고 말한다.
◆‘모두를 위한 정책’ 인식 개선 시급
남미 한국교원대 학술연구교수는 ‘다문화가정 아동의 교육 지원에 대한 학부모의 인식 및 요구 분석’ 논문에서 “다문화 사회로 성공을 거둔 나라의 공통점은 교육 변화를 중시했다는 점”이라며 “교육을 통한 인식 개선은 안정적인 다문화 국가 진입을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밝혔다. 그는 “동화정책에서 벗어나 다양성이 존중되는 의식 변화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사회) 혼란을 피할 수 없다”며 “다문화교육은 다문화가정만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란 고정관념에서 탈피해 모두를 위한 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교육부도 이런 문제의식에 공감, 올해 ‘다문화 강점개발 정책학교’ 200곳을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이곳에선 이주배경학생뿐만 아니라 해당 학교의 모든 학생이 이중언어를 학습하고 글로벌 마인드를 함양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중도입국학생 지원 강화돼야
교육계에선 특히 부모가 취업 등으로 한국에 오거나 부모 중 한 명이 한국인과 재혼하면서 한국에 온 외국인·중도입국학생에 대한 정책이 강화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은 한국 출생(70%)보다 상대적으로 비중이 작지만 증가세는 가파르다. 국내 출생 이주배경학생은 2014년 5만7498명에서 2023년 12만9910명으로 2.3배 증가하는 동안 외국인·중도입국학생은 1만308명에서 5만1268명으로 약 5배 늘었다. 이들은 대부분 한국어를 전혀 쓰지 않다가 갑자기 한국에 와 언어 문제로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지난해 기준 외국인·중도입국학생의 한국어학급(한국어 보충 수업을 할 수 있는 교실) 수용률은 10.3%에 그치는 등 한국어 지원 인프라가 부족하고, 한국어 교육도 대부분 생활 한국어 위주로여서 교과 교육은 미흡하다.
유진이 다문화아동청소년연구원장(평택대 아동·청소년교육상담학과 교수)은 “중도입국학생을 위한 커리큘럼 자체가 없다. 교육청에서 민간에 위탁교육을 맡기면서도 교육은 알아서 하라고 한다”며 “한국어도 잘 모르는 아이들에게 수학·사회 등을 가르치면 당연히 알아들을 수 없는데 수업 시간은 채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본국에서 공부 잘하고 꿈도 많던 아이가 한국에 와서 ‘한국말을 못하니 학교에서 바보가 된 느낌이다. 꿈이 없어졌다’고 해 가슴 아팠다”며 “교육 당국에서 이런 아이들을 위한 커리큘럼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아이들도 문제다. 유 원장은 “엄마가 재혼하면서 10대 초반에 중국에서 온 청소년이 7년 동안 학교에 안 가고 집에만 있던 경우도 있었다”며 “이런 아이들이 방치되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교육부는 내년부터 3년마다 이주배경학생의 기본 현황과 교육 현황 등에 대해 실태조사를 하고, 다문화밀집학교에 한국어학급을 늘리는 등 한국어 교육 인프라를 늘린다는 방침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지금까지 중도입국학생에 대한 정책은 부족했다. 이제 막 지원을 시작한 단계”라며 “앞으로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