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6시30분 하루를 시작한 대학생 박모(25)씨는 약 10초 동안 차가운 물로 세수하며 잠을 깨웠다. 멍하니 흘러나오는 물을 바라보며 고양이 세수를 하는 10초 동안 1ℓ의 물이 수도꼭지로 쏟아져 나왔다.
세면대에서 3분간 머리를 감는 동안에는 22.5ℓ의 물이 흘러 나갔다.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하는 13분 동안 박씨는 97.5ℓ의 물을 소비했다. 오전 7시 집을 나서기 전 쌓인 그릇들 설거지를 하고 화장실을 이용하자 49ℓ의 물이 추가로 사용됐다. 그가 오전에 쓴 물만 162ℓ가 넘는다.
시험을 앞두고 박씨는 온종일 학교 도서관에만 머물렀다.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 외에는 물과 직접적인 ‘접촉’을 하지 않았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총 4번 화장실을 이용한 게 전부다. 이 과정에서 박씨는 27.2ℓ를 흘려보냈다.
집에 돌아와 끝내지 못한 공부를 마저 하며 박씨는 오전 1시까지 화장실을 3번 더 이용했다. 졸음이 찾아오자 차가운 물로 머리를 감고 10분간 빠르게 샤워하며 약 4시간30 동안 118.5ℓ를 추가로 사용했다.
‘308.2ℓ.’ 집과 학교 도서관에만 머문 박씨가 하루 동안 사용한 물의 양이다. 섭취한 음료나 음식 조리 등에 필요한 물은 제외했음에도 500㎖ 페트병 약 616개 분량의 물이 박씨도 모르는 사이에 소비됐다.
박씨가 사용한 물의 양은 수도법 시행규칙 환경부령 제1052호에 명시된 절수설비·절수기기 기준에 따라 계산됐다. 환경부령에 따르면 1분당 나오는 물의 양이 가정용 수도꼭지는 6ℓ(공중 화장실 수도꼭지는 5ℓ), 샤워기는 7.5ℓ, 변기는 1회 사용 시 6ℓ 이하가 돼야 한다. 소비된 물의 양은 환경부령 기준에 제시된 기준(최대 사용량 기준)과 사용 시간을 계산해 산출했다.
◆대한민국은 과연 물 부족 국가일까
‘대한민국은 물 부족 국가.’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지적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과연 물 부족 국가인지를 놓고는 의견이 팽팽하다.
우리나라는 강수량이 많은 편이지만 인구가 많고 국토가 좁아 물 사용량이 많은 편에 속한다.
29일 환경부 상수도통계(2022년)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 1인당 하루 물 사용량은 305.6ℓ다. 약 130ℓ를 소비하는 것으로 알려진 독일과 덴마크와 비교하면 2배 이상의 물을 사용한다.
물 부족 우려도 계속 제기되고 있다. 2019년 유엔이 발표한 세계 물 보고서 ‘국가별 물 스트레스(부족) 수준’에 따르면 한국은 물 스트레스 지수 25∼70%에 속해 ‘물 스트레스 국가’로 분류된다. 물 스트레스 지수가 70% 이상인 국가는 북아프리카와 중동으로, 흔히 고온의 날씨를 유지하며 메마른 공기가 1년 내내 이어지는 곳들이다.
물 부족 국가를 넘어 ‘기근’ 국가로 전락할 것이란 경고도 나온다. 전 세계 국가를 대상으로 물 부족 여부를 평가하는 국제인구행동연구소(PAI)는 한국이 2025년에 ‘물 기근 국가’로 바뀔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PAI에 따르면 1인당 이용할 수 있는 연간 수자원량이 1700㎥ 이상이면 ‘물 풍요국가’, 1000㎥ 이상∼1700㎥ 미만은 ‘물 부족 국가’, 1000㎥ 미만은 ‘물 기근 국가’에 해당한다.
다만 전문가들은 단순히 수치만으로 한 국가의 물 사정을 얘기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무영 서울대 명예교수(건설환경공학)는 “일부 수치만으로 (국가) 전체를 평가하는 건 옳지 않다”며 “물 부족 국가 여부를 판단하기보다 물 절약은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게 옳다”고 설명했다. 한 국가라 하더라도 우리나라처럼 지역마다 또는 개인마다 느끼는 게 다르기에 단순 판단이 어렵다는 의미이다.
◆“물 절약 정책 변화 필요”
분명한 건 국내 물 사용량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 1인당 하루 물 사용량은 2019년 294.9ℓ, 2020년 295.3ℓ, 2021년 302.4ℓ, 2022년 305.6ℓ 등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물 절약을 위한 노력은 과거부터 시행됐다. 환경부는 2000년 3월 공급 중심의 물관리 정책 기조를 수요 관리로 초점을 옮긴다며 ‘물절약종합대책’을 추진했다. 당시 환경부는 유엔이 우리나라를 물 부족 국가로 분류한 점과 국민의 물 낭비 등을 들어 2006년까지 물 생산량의 13.5%를 줄이겠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2007∼2016년에는 앞서 나온 정책인 물절약종합대책의 문제점 등을 보완해 ‘국가 물 수요 관리 종합대책’을 수립했다. 절수 목표를 설정하고 지방자치단체의 물 수요를 관리하는 데 초점을 맞춘 정책이었다.
하지만 국내 물 관련 정책은 눈에 띄는 절감 효과를 내지 못했다. 정책이 ‘구체적인 예방 방법’보다는 ‘단순 목표 설정’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한 명예교수는 “정부가 말로만 물 수요 관리를 한다고 발표하기보다는 구체적인 수치와 방법으로 국민에게 물 절약 방법을 알려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인 수치가 있어야 국민이 절약된 물의 양을 피부로 느끼고 물 절약 방법을 알아야 정책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경제성장률을 발표하듯이 정책을 통해 물이 얼마나 절약됐고, 세금이 얼마나 투입됐고, 어떤 결과를 만들어냈는지 등을 담은 수치가 필요하다”며 “2050년과 같이 기간을 정해두고 물 절약 로드맵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