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미술관 운영자들의 생각이 바뀌고 있다. 예전에는 ‘우리가 소장한 유물 또는 작품을 하나라도 더 보여줘야지’였다면 이제는 그렇지 않다. 관람객이 정말 원하는 전시물이라면 단 한 개라도 제대로 감상할 기회를 줘야 한다는 쪽이 대세인 듯하다. 국내에선 2021년 말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2층에 문을 연 ‘사유의 방’이 그 계기가 됐다. 440㎡(약 133평) 면적의 독립 공간 안에 국보 ‘반가사유상’ 두 점만 세워 놓았다. 얼핏 ‘썰렁할 수도 있겠다’ 싶지만 정작 사유의 방을 다녀온 이들은 “제대로 된 힐링(치유)을 경험했다”고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같은 중앙박물관 내 ‘손기정 기증 청동 투구’ 전시실은 또 어떤가. 144㎡(약 43평) 규모의 방 안에 전시물이라곤 청동투구 딱 하나뿐이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 수상자인 손기정에게 부상으로 주어진 투구의 이력을 소개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만들어진 투구가 한국의 문화재(보물)로 지정된 점도 흥미롭지만, 손기정의 국적이 왜 일본으로 기재될 수밖에 없었는지 관련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동영상 등 시청각 자료가 눈길을 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