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속초 한 자동차 부품업체에서 함께 근무하던 직장 상사의 지속적인 괴롭힘을 견디다 못한 20대 사회 초년생이 지난해 5월 세상을 떠났다. 유족들은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인격 모독 발언들이 사망에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며 가해자가 합당한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1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전영진(사망 당시 25세)씨는 2021년 8월 강원 속초시 한 자동차 부품업체에 입사했다. 전 직원이 5명도 채 되지 않는 작은 회사였지만 첫 직장을 갖게 된 전씨는 누구보다 기뻐했다고 한다. 취업에 성공했다는 기쁨도 잠시, 악몽이 시작됐다. 같은 회사 상사인 A(41)씨의 압박과 폭언이 시작된 것이다.
A씨는 전씨에게 “닭대가리 같은 XX 진짜 확 줄여버릴라. 내일 아침부터 한번 맞아보자 이거지. 이 거지 같은 XX아”라고 폭언을 쏟아 붓는가 하면 “죄송하면 다야 이 XX야. 내일 아침에 오자마자 빠따 열두 대야”라고 말하는 등 협박을 일삼았다.
전씨가 사망하기 나흘 전까지 A씨의 폭언은 지속됐다. 당시 A씨는 “지금 내가 열 받는 거 겨우 참고 있는데 진짜 눈 돌아가면 너네 어미애비고 다 쫓아가 죽일 거야. 내일부터 정신 똑바로 차려. 너 전화 한 번만 더 하면 죽일거야”라고 했다. 이 같은 내용은 사망한 전씨의 휴대전화에 모두 녹음돼 있었다. 수사 과정에서 A씨가 전씨를 폭행한 사실도 드러났다.
유족들은 전씨가 사망 전날까지도 직장에서의 고통을 한 번도 털어놓지 않았다고 했다. 전씨 형 영호씨는 “나이 많은 직장 상사가 일을 들먹이며 죽여 버린다고 하니 사회 초년생 입장에서는 굉장히 무서웠을 것”이라며 “가족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서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동생은 평소에도 가족 걱정을 많이 했다”고 안타까워했다.
A씨는 폭행과 협박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을 맡은 춘천지법 속초지원 형사1단독 장태영 판사는 “피고인은 반성하는 태도를 보인다. 피해자와 피해자 유족들에게 사죄 뜻을 밝히고 300만원을 형사 공탁했다. 음주운전으로 3차례 벌금형을 선고받았으나 이후 형사 처분 전력은 없다”면서도 “그러나 피고인은 직장 상사로 피해자를 전담해 업무를 가르치는 역할을 하면서 수차례 폭행을 가하고 2개월간 폭언과 협박을 반복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자는 거의 매일 극심한 폭언과 압박에 시달렸고 탈출구를 찾을 수 없어 결국 죽음에 이르렀다. 피해자가 겪었을 정신적 고통, 두려움, 스트레스는 가늠하기조차 어렵다”며 “이 사건은 직장 내 괴롭힘의 극단적 사례를 보여준다. 유족들은 커다란 슬픔에 빠져있고 강력한 처벌을 원하는 의사를 표시하고 있다”며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유족들은 1심 판결에 아쉬움을 표했다. 전씨의 사망에 A씨가 깊숙하게 개입됐지만 인과관계를 입증하지 못해 형량이 죗값에 미치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영호씨는 “징역 2년 6개월은 솔직히 적다. 사람이 죽었는데 합당한 죗값은 무기징역이라고 생각한다”며 “살인죄로 처벌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유족은 산업재해를 신청할 예정이다. 아울러 A씨와 회사 대표를 상대로 손해배상 민사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A씨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이달 30일 춘천지법 강릉지원에서 항소심 첫 공판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