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털기·협박·성희롱 다반사… ‘악성 민원’, 이번엔 뿌리 뽑힐까

정부, ‘공무원 보호 강화’ 대책 발표
각 기관 전담대응팀 꾸려 고발키로
노조, ‘통화 종결권’ 등 반영 긍정적
대책 미이행 기관장 처벌조항 없고
안전요원 배치 등도 대책에 안담겨
“사전예방·사후조치 꾸준히 추진을”

2018년 경북 봉화군에서 상수도 문제로 주민 간 다툼이 발생했다. 면사무소가 이를 뜻대로 처리해주지 않는다며 민원인이 엽총을 난사해 공무원 2명이 사망했다. 지난해 경기 구리시에선 행정복지센터 9급 공무원이 민원인을 상대한 후 인근 아파트 옥상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정확한 사망원인은 알 수 없지만, 민원 스트레스가 사망원인이었던 것으로 추정됐다. 올해 3월에는 경기 김포시 9급 공무원이 야간 포트홀 공사로 교통정체가 야기되자 항의 전화에 시달리고, 온라인에서 신상이 공개되는 등 괴롭힘을 당하다 사망했다.

 

행정안전부와 인사혁신처 등 정부가 2일 ‘악성민원 방지 및 민원공무원 보호 강화 대책’을 발표하며 소개한 악성민원에 따른 인명사고 사례다. 일선 현장의 공무원들을 죽음으로 내몰 정도의 악성민원과 위법행위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이 밖에도 “사랑한다”, “이상형이다”라며 성희롱 발언을 하는가 하면, 칼로 위협하거나 몸에 불을 지르겠다고 협박하는 등 심각한 위법행위가 일선 현장에서 자행되고 있었다. 민원인 1명이 국민신문고를 통해 1년간 민원 3만3660여건을 신청하고, 하루에도 2~3차례씩 전화를 걸어 50분가량 전화를 하는 등 업무 방해를 한 사례도 드러났다.

 

민원인의 위법행위는 2020년 4만6079건, 2021년 5만1883건 등 매년 증가했다가 2022년 4만1559건을 기록했다. 유형별로는 폭언이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협박, 성희롱, 폭행, 기물파손 등이 뒤를 이었다. 그럼에도 신고와 고소·고발 등 위법행위에 대응한 건수는 2020년 627건, 2021년 801건, 2022년 685건으로, 전체의 1.4∼1.6%에 불과했다.

 

정부는 이번 대책을 통해 민원인의 폭언 등 전화를 공무원이 먼저 끊을 수 있게 하고, 통화 전 과정을 녹음해 악성민원을 조기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전담 대응조직을 만들고, 법령에 폭언·폭행 등 민원인의 위법행위에 기관이 법적으로 대응하는 것을 원칙으로 명시해 악성민원에 강하게 대응하겠다고 공언했다.

 

현장에선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나온다. 그동안 요구했던 장시간 통화 종료, 법적 대응 강화 등 내용이 다수 반영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정작 일선에서 대책이 제대로 작동할지에 대해선 의구심을 표하는 분위기다. 우선 전담대응팀 구성이 의무가 아닌 권장 수준이고, 기관장이 민원공무원 보호조치를 미이행했을 때 처벌조항이 없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또 민원부서에 안전요원을 배치하기 위해선 정원을 확대하고 인건비를 증액해야 함에도 이와 관련한 대책이 담겨 있지 않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이날 성명을 내고 “이번 정부 대책에는 인력, 예산이라는 중요한 알맹이가 빠져 있다. 기관장들 처벌조항도 없어 인력과 예산 핑계를 댈 것이 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전 예방·사후 대응 조치 등의 대책이 일시적으로 끝나지 않고 꾸준하게 추진돼야 더 이상의 희생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