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총선을 압승한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이 절대다수 의석수를 등에 업고 사회적 재난과 참사 진상 규명을 넘어 이미 재판 진행 중인 야권 인사에 대한 검찰 수사 과정 자체를 특별검사의 수사 대상에 넣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5일 전해졌다. 그중엔 이미 1·2심이 실형을 선고해 대법원의 최종심만 앞둔 ‘조국 사태’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검찰이 그 사건을 ‘조작 수사’했는지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야당이 이를 밀어붙일 경우 조작된 수사 결과로 법원이 실형 선고를 했다는 주장을 펴는 셈이 된다.
‘네 편 수사’엔 성역이 없다는 야권이 ‘내 편 수사’엔 조작이 의심된다고 주장하며 특검 제도를 ‘무기’로 악용하려 들고 있다. 법조계에선 정치가 형사사법 체계를 뒤흔들고 나아가 삼권분립을 훼손하는 행태라는 비판이 나온다. 야권 내부에서조차 개별 의원들로부터 “사실관계가 파악된 것이 맞나”라는 우려가 나오지만, 총선 이후 친명(친이재명) 색채가 더욱 선명해지자 불이익을 우려해 대세를 거스르는 발언을 극도로 삼가는 기류다.
민주당 ‘정치검찰 사건조작 특별대책단’의 한 관계자는 통화에서 ‘조국 사태’ 수사 과정을 22대 국회에서 특검 대상에 넣을지에 대해 “그렇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인지를 검토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는 “‘사건조작’이라고 하는 범위를 우리가 잡았다”며 “사건조작을 하는 건 다 검사들 아닌가”라고 말했다.
조국혁신당 황운하 원내대표가 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 수사 과정도 특검 수사 검토 대상인 것으로 전해졌다.
친명계 박찬대 신임 원내대표가 취임 일성으로 현 정부를 겨냥한 각종 특검법안을 22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추진하겠다고 밝힌 점도 특검 정국을 부추기고 있다.
법학계에선 야당의 움직임을 두고 특검 제도의 본질에 반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법부에 대한 압박일 뿐 아니라 특검 제도 본질과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장 교수는 “이미 수사가 다 끝난 것 갖고 조작 수사라고 하면서 특검을 한다는 건 상식 밖”이라고 했다. 또 “만약 검찰이 조작 수사를 했다면 그건 법원에서 조작인지 아닌지 밝혀야 할 부분”이라며 “민주당의 주장은 결국 야당 중요 인물에 대한 검찰 수사를 모두 특검하겠다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
◆野 의석수로 ‘특검 무기화’… 사실상 수사기관·법원 압박
더불어민주당이 야권 인사들 사건 수사 과정상의 조작 여부를 특검 수사로 따져보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나선 데는 사실상 수사기관과 법원을 압박하겠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행태는 정쟁 목적의 ‘특검 도구화’를 넘어 ‘특검 무기화’나 다름없다는 평가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확정받자 민주당이 “검찰 조작 수사”라며 무죄를 주장했던 것과 같이 ‘우리 진영’ 사람 수사라면 일단 수사기관부터 ‘악마화’해 내부적으로는 지지층을 규합하고, 외부적으로는 수사 정당성과 형사사법 체계, 나아가 삼권분립까지 흔드는 일을 서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野 “국민 여론도 나쁘지 않을 것”
재판 진행 중인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2심 징역 2년)와 황운하 원내대표(1심 징역 3년) 사건의 검찰 수사 과정에 대한 특검 필요성을 검토하는 기구는 민주당 내 ‘정치검찰 사건조작 특별대책단’이다. “협치라는 단어를 머릿속에서 지워야 한다”고 했던 민형배 의원이 단장을 맡고 있다. 이재명 대표가 연루된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을 변호해 ‘대장동 변호인단’으로 불렸던 박균택·양부남·김기표·이건태·김동아 당선자 등도 포진해 있다.
21대 국회에 강성파 초선 의원 모임 ‘처럼회’가 있었다면, 22대에는 이들 의원이 주축이 된 대책단이 당내 공식기구로서 대여 공세의 선봉 부대로 나설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 한 재선 의원은 “지금 분위기로는 특검 사안들이 말도 안 되는 수준이 아니라고 한다면 계속 추진될 것 같다”며 “만약 유죄를 받아도 사건이 조작돼 재심으로 무죄가 나는 경우도 있지 않나”라고 했다. 이어 “당에서 강경 드라이브를 거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을 것 같다. 선거도 당장 없기 때문에 2년 동안 그런 분위기일 것”이라고 했다.
쌍방울그룹의 대북송금 의혹 사건 피고인인 이화영 전 경기 평화부지사가 1심 재판 막바지에 제기한 ‘술자리 회유’ 의혹에 대한 특검 필요성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 수도권 의원은 “이 전 부지사가 그렇게 구체적으로 거짓말을 할 이유는 별로 없어 보인다”며 “아마 국민들 여론이 좀 모일 것 같다”고 했다. 이 사건과 관련, 이 대표가 경기지사 시절 대북송금 사실을 인지했는지 여부를 1심에서 판단할지에 정치권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만약 이 대표가 그 사실을 인지했다는 판단이 나올 경우 추가 기소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 밖에도 박찬대 신임 원내대표가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및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법을 “22대 국회가 시작되면 바로 발의할 생각”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지난 2일 야권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채 상병 특검법도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다음 국회에서 재차 발의할 태세다.
◆“역풍 맞을 것”
야권의 잇단 특검 공세에 당 안팎에선 자칫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야권 한 중진 의원은 “필요한 경우에는 입법화해서 특검을 추진해야 하겠지만, 특검법안이 너무 많으면 외관상 보기에 좋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의원도 “특검 추진에 앞서 사실관계를 판단하는 것이 우선이 돼야 할 것”이라며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냈다.
야권 내에선 민주당이 주도해 설립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채 상병 사건 관련 수사를 진행 중인데,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특검법안을 처리한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이 있다.
덕성여대 조진만 교수(정치외교학)는 “강성 지지자들이 요구하는 바에 민주당이 반응을 안 할 수도 없을 것”이라며 “정치적으로 선거에서 이긴 상황에서 윤석열정부를 심판하고 그 동력으로 개원과 동시에 치고 나가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도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명지대 신율 교수(〃)는 “현 정권의 기를 확 누르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민심의 역풍이 불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본다”고 우려했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차진아 교수는 “민주당이 사법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특검제도를 오남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차 교수는 “특검제도는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이 보장되는 특검을 통해 정치적 문제와 상관없이 기소하고 공소유지를 하도록 한 제도”라면서 “정치적인 압력 때문에 수사가 어렵거나 현직 대통령과 그 가족 및 측근이 대상인 경우 등 특별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인정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미 공소제기가 돼 재판이 진행 중이거나 하급심 판결이 나온 경우는 특검 대상이 아니다”면서 “그런 경우까지 특검한다고 남발하는 것은 민주당이 원내 과반 의석을 과신해 사법 리스크를 정당화하고 수사기관과 법원 같은 사법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