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이르면 7일 민정수석을 신설하는 대통령실 조직 개편을 단행할 전망이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민정수석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고 실천했던 윤 대통령이 집권 3년 차에 이를 번복하는 것에 대해 대통령실은 4∙10 총선 패인 중 하나로 지목된 민심 청취 기능을 강화하고 공직 기강을 확립하려는 차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을 겨냥한 더불어민주당의 ‘해병대 채 상병 특검법’ 공세와 김건희 여사 관련 사법 리스크가 커진 가운데 검∙경 장악을 위한 사정 기능 강화 성격이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尹대통령, 민정수석 왜 폐지했나
‘민정수석실 폐지’는 2022년 3월14일 당시 윤석열 당선인이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첫 출근 일성으로 재확인한 대선 공약이었다.
당시 윤 당선인은 “일명 ‘사직동팀’은 있을 수 없다”며 “과거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합법을 가장해 정적, 정치적 반대 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신상털기와 뒷조사를 벌여왔는데 이런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밝혔다.
과거 청와대 특명에 따라 정보수집 및 수사를 벌였던 비공식조직인 ‘사직동팀’(경찰청 형사국 조사과)은 2000년 10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지시로 해체됐다. 당시 윤 당선인이 “사직동팀은 있을 수 없다”며 20년 전 일을 언급한 것은 윤석열정부에는 폐지되는 민정수석실을 포함해 그 어떤 사정 조직도 두지 않겠다는 의지 표명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윤 대통령은 이를 실천하며 문재인정부 시절 민정수석 산하에 있던 민정비서관∙반부패비서관을 폐지하고, 공직기강비서관과 법률비서관은 기능을 남긴 뒤 비서실장 직속으로 옮겼다.
과거 민정수석은 권력의 핵심 중 핵심인 인사권∙사정권을 쥐며 ‘날아가는 새도 손가락으로 찍어내서 떨어뜨리는 자리’라는 평을 들었다. 1960년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검찰, 경찰, 감사원,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등 사정기관을 통제하는 민정수석을 신설한 이래 역대 대통령은 모두 이 직제를 유지하며 중앙집권적인 대통령제의 핵심 기능으로 활용했다. 특히 대통령이 비법조인인 경우 사정기관의 업무와 법률에 대한 이해가 떨어져 민정수석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윤 대통령이 이를 폐지했던 데는 대통령 본인이 검찰총장까지 지낸 전문가인 만큼 굳이 민정수석을 두지 않아도 사정기관에 대한 대통령의 이해도가 높고 인적 기반이 강해 전반적 관리가 가능하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공약 번복 논란 감수하며 왜 부활시키나
대통령실 내에서 민정수석 기능의 필요성은 취임 이후 계속 제기됐지만 공약 파기 부담으로 인해 물밑 논의에 그쳤다.
하지만 지난 총선 참패 이후 분위기가 급변했다. 한 곳에 있던 민정, 인사 업무가 여러 곳에 분산되며 기능이 약화돼 여론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문제 의식이 커졌고, 정권 중반부에 여론의 심판을 받으며 관료 조직이 해이해질 우려도 제기됐다. 정치권에선 “공무원이야 말로 누구보다 정치적인 집단”이라고 보고 있다.
또 야권이 쏘아대는 특검법 공세에 윤 대통령 부부의 ‘사법 리스크’도 불거진 상황이다. 지금까지는 대통령의 헌법적 권한인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해 김 여사 특검법 등을 막았지만, 대통령의 장악력이 약해진 여권의 22대 국회 의석(108석)으로는 완벽한 방어를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윤 대통령은 역대 정부의 민정수석 기능 가운데 사정∙인사를 사실상 법무부에 넘기며 법무부 장관을 측근이었던 한동훈 전 장관에게 맡겼다. 민정수석이 없어도 해당 기능이 유지되도록 시스템을 보완해놓은 것이다. 하지만 인사 기능만 해도 대통령실과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경찰로 분산되며 기능이 약화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실례로 2023년 2월 국가수사본부장에 내정됐던 정순신 변호사는 자녀의 학교폭력 가해 사실이 알려지며 하루 만에 낙마했고 부실 검증 논란이 일었다. 당시 대통령실은 “(검증에)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며 인사 검증에 한계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지난해 인사 파동이 거세게 일었던 국가정보원 사태도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안보 기관에 대한 인사 실패가 원인으로 지목됐다.
안보 기관 내부가 좌∙우파 등 여러 라인으로 나뉘어 갈등하는 가운데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는 인사 농단이 벌어져 2023년 6월 윤 대통령이 재가했던 국정원 1급 인사를 대통령이 직접 번복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국정원은 아직도 100명 이상이 대기발령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며 조직 정상화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민정수석의 분산된 기능을 하나로 모아 이러한 문제들을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며 민정수석 부활이 현실화된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의 영수회담에서 “김대중정부에서도 민정수석을 없앴다가 2년 뒤 다시 만들었는데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여권에선 이원석 검찰총장이 최근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해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진의를 놓고 독자 행보를 우려하는 시각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정수석이 부활하는 것에 대해 ‘민심 청취 강화’라는 대통령실의 설명에도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대통령실은 검∙경에 대한 장악력을 강화하려 한다는 의구심을 불식시키기 위해 사정 기능은 제외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윤 대통령이 오는 9일로 관측되는 기자회견에서 이에 대해 직접 설명할 것으로 보인다.
◆역대 정권의 민정수석 ‘수난사’
민정수석은 ‘실세 중의 실세’인 만큼 많은 주목을 받았고 다른 수석비서관에 비해 부침이 큰 ‘수난사’가 이어졌다.
주로 ‘엘리트 검사’가 자리를 꿰찬 가운데 검찰과 불편한 관계의 정권에선 충격요법으로 비(非)검찰 출신을 민정수석에 기용하기도 했다. 이 경우 정권의 총애를 받는 대통령 측근이 기용돼 더욱 큰 주목을 받았다.
문재인정권의 초대 민정수석(2017년 5월∼2019년 7월)이었던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대표적이다. 조 전 수석은 2019년 청와대 생활을 마치고 법무부 장관에 임명됐다가 자녀의 입시비리 등 ‘조국 사태’에 휘말리며 파장을 낳았다. 조 대표의 후임이었던 김조원 전 수석은 부동산 문제로 약 1년 만에 자리를 떠났다. 당시 청와대의 ‘참모진 1주택 보유’ 방침과 달리 서울 강남 아파트 2채를 보유하고 있다가 시중 가격보다 비싸게 주택 매물을 내놓은 게 화근이 됐다. 김 전 수석은 직을 떠나며 아파트는 처분하지 않았다. 지난 정부의 부동산 호황기에 “자리(민정수석) 보다 아파트”라는 비아냥이 나오기도 했다.
이후 김종호 전 수석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간 충돌을 중재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임명 4개월 만에 떠났다. 그 후임자였던 신현수 전 수석도 당시 박범계 법무부 장관과 검찰 인사를 놓고 갈등을 빚으며 3개월 만에 떠났고, 김진국 전 수석은 ‘아들의 아빠 찬스’ 논란에 휘말리며 9개월 만에 청와대를 떠났다. 문 정부의 마지막 민정수석은 판사 출신인 김영식 전 수석이었다.
박근혜정권에서도 초반에 곽상도(4개월), 홍경식(10개월), 김영한(8개월) 전 수석들이 청와대 생활을 짧게 마쳤다. 김영한 전 수석은 2014년 ‘정윤회 문건 유출 파문’ 당시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하라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지시에 응하지 않고 사표를 내며 ‘항명 사태’가 불거졌다. 박 전 대통령이 2015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김 전 수석이) 국회에 나가서 이야기를 했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며 직접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후임자로 부임한 우병우 전 수석은 국가정보원을 통해 불법사찰을 한 혐의로 기소돼 2021년 징역 1년형이 확정됐다.
윤 정부의 첫 민정수석은 김주현 전 법무차관이 맡을 전망이다. 김 전 차관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제28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1989년 서울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법무부 기조실장과 검찰국장을 거쳐 박근혜정부 때 법무차관과 대검 차장을 지냈다. 검사 시절 윤 대통령과의 친분은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