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 간호사 잉게보르크 베스트팔 할머니는 청년 시절인 1954∼1956년 부산에서 6·25전쟁 부상자 등 치료에 헌신했다. 그는 전쟁 직후인 1954년 5월부터 1959년 3월까지 부산에 설치·운영된 독일적십자병원 소속이었다. 훗날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할머니는 “한국에 처음 갔을 때는 심각하고 비참한 상황이었다”고 회상했다. 우리 정부 초청으로 2000년대 한국을 방문한 뒤에는 “너무 멋지게 발전해 내 기억 속에 있던 한국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며 기뻐했다. 2022년 3월 그가 별세하자 주독일 한국대사관은 “6·25전쟁 중 맺은 대한민국과 독일 간의 우정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애도했다.
한국인들은 오랫동안 ‘참전 21개국’이란 표현에 익숙했다. 6·25전쟁 당시 전투병력을 보낸 미국, 영국 등 16개국과 의료지원을 제공한 스웨덴 등 5개국을 합쳐 그렇게 불렀다. 전쟁이 종반으로 치닫던 1953년 4월 독일(당시 서독)은 유엔군을 이끌던 미국에 “야전병원을 한국으로 보내겠다”고 제안했다. 미국의 동의를 얻은 뒤에도 의료진 구성과 파견까지 상당한 시일이 소요됐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해 온 나라가 쑥대밭이 된 상황에서 해외 파병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