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선별기 ‘빛의 양’ 측정 당도·중량 등 산출 ‘최상급’ 분류 육안 의존했던 속 상태 확인 90분간 2000통가량 선별 고객 불만·인력난 해소 기대
겉보기에는 다를 바가 없었다. 트럭에 한가득 쌓인 수박은 직원의 숙련된 솜씨로 컨베이어 벨트에 차곡차곡 올라탔다. 레일을 따라 일제히 움직이던 수박들은 커다란 기계 두 대를 차례차례 통과했다. 기계를 빠져나온 수박들은 합격과 불합격, 두 갈래로 흩어졌다. 두 기계가 측정한 당도, 중량, 밀도에 따른 결과였다. 레인 바깥쪽으로 빠진 수박들을 반으로 가르자 모두 속이 비었거나 과하게 물러져 있었다. 반면 무사히 레인 끝에 도착한 수박들은 빨갛게 꽉 찬 속살이 드러났다. 합격 수박의 즙을 짜 측정한 당도는 기계 모니터에 쓰인 것과 일치했다.
지난달 30일 찾은 경남 함안의 농업회사법인 ‘탐스팜’ 선별장은 수확한 수박을 전국 각지의 대형마트로 보내기 전 마지막 점검을 하는 작업장이지만 마치 자동화 설비를 갖춘 공장에 가까워 보였다.
탐스팜은 올해 롯데마트·슈퍼의 제안에 따라 국내 최초로 인공지능(AI) 선별 시스템을 도입했다. ‘고르지 않아도 맛있는 과일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2022년부터 신선식품 품질 개선에 주력해온 롯데마트의 ‘신선을 새롭게’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AI 시스템 도입에 따라 이곳에서는 당도 11브릭스, 밀도값 910∼1100의 최상급 수박을 분류해낸다. 먼저 비파괴 당도 선별기를 통해 빛을 과일에 쏘아 투과한 빛의 양을 측정, 당도를 계산한다. 당이 빛을 흡수하는 성질을 이용한 방식이다.
당도가 측정되고 나면 이날까지 수박 5만여통의 특징을 학습한 AI 선별기가 밀도값을 산출해 품질을 판별한다. 기계에 달린 8개의 카메라가 각기 다른 각도에서 겉면을 촬영해 부피를 구하고, 측정된 중량을 활용한다. 수박이 덜 익었거나 속이 빈 경우 밀도값이 낮게 나타나고, 과도하게 익었거나 육질악변과(피수박)면 밀도값이 높게 나타난다. 육안에만 의존해야 했던 수박 속 상태를 자르지 않고도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딥러닝 방식을 활용했기 때문에 수박을 선별할수록 정확도가 높아지는 것은 물론, 약 90분 동안 수박 2000통가량을 선별해낼 수 있어 효과적이라는 것이 롯데마트의 설명이다.
송병용 탐스팜 대표는 “일손 부족 문제를 해결해주고, 사업장의 인력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AI 선별 시스템을 도입했다. 실제로 AI가 인부 1∼2명의 몫을 해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도입 초기 몇 주 동안 수박을 선별하면서 정확도를 더 높였다. 우리가 국내 최초로 수박 선별에 AI를 도입했기 때문에 올해 수박 철이 지나면 경쟁력은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롯데마트와 슈퍼는 수박 외에 하미과, 천도복숭아, 사과, 참외 등에 AI 선별 시스템을 도입해왔다. 참외의 경우, 4개의 카메라 렌즈로 한 알당 48장의 이미지를 분석해, 크기·중량 등은 물론 육안으로 구분하기 힘든 바이러스, 노균병 등 외부 결함을 정밀하게 검수한다.
가장 먼저 AI 선별 시스템을 적용한 하미과는 중량과 당도뿐만 아니라 수분 함량과 후숙도까지 측정한다. 10개의 렌즈에서 근적외선을 쏘아 얻은 화상 데이터를 통해 다양한 품종에 따라 투광을 조정하는 것은 물론 꼭지 사이 빈틈으로 들어가 과육을 상하게 하는 ‘핵할’ 검출이 가능하다. 하미과의 신선도가 높아지면서 AI 선별 시스템 도입 첫해인 2022년 고객 불만 건수가 전년과 비교해 절반가량 줄었고, 지난해에는 2022년보다도 20%가량 더 감소했다. 매출액은 2022년과 비교해 30% 이상 늘었다.
신한솔 롯데마트 과일팀 MD는 “수박은 소비자가 눈으로 구분할 수 없는 대표적인 상품이다. 맛과 품질에 대한 걱정을 덜어드리고자 국내 최초로 ‘AI 선별 시스템’으로 품질 검증을 완료한 상품을 준비했다”며 “매장 내 어떠한 신선식품을 구매하더라도 맛과 품질 측면에서 최고의 만족도를 제공한다는 것이 롯데마트의 가치”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