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으로 하나된 남북 “체제 다르지만 ‘여기선 못 낳아’ 여성들 한목소리”

“남한과 북한은 체제는 다르지만 두 곳의 여성 모두 ’여기서는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시스템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는 점이 흥미롭죠.”

 

한반도 문제에 정통한 유럽 출신 학자 가브리엘라 버낼 박사는 최근 북한에서도 저출생이 화두인 것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평양산원의 한 간호사가 신생아실에서 갓난 아기들을 돌보고 있다. AP뉴스

지난 1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북한 여성들이 아이를 적게 낳는 추세가 수년 전부터 계속돼 왔다고 말했다. 가장 큰 이유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크게 나빠진 경제 상황이 여전히 호전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버낼 박사는 진단했다.

 

”한국에서도 아이를 원한다면 충분한 돈이 있어야 하는 건 마찬가지잖아요. 남북한 여성이 모두 경제적 부담을 걱정하지만 북한에서는 ‘생존’의 문제라는 점이 다릅니다.”

 

북한 같은 제한된 환경과 사회에서 살아남는 것이 점점 더 힘들어지는 경제 상황에서 여성들이 아이 낳기를 꺼려하게 됐다는 분석이다.

 

버낼 박사는 남북한 여성들이 각각 속한 사회 시스템을 신뢰하지 않음에 따라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남한의 경우 여성의 교육 수준이 높고, 좋은 직장에서 포기하기 아까운 일에 종사하는 여성도 늘고 있다. 이들은 현재 한국 사회가 ‘여성이 아이를 가지려면 자신의 커리어와 공부한 것을 희생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특히 젊은 여성들의 경우 “한국 사회의 교육 시스템에서 자신들이 겪은 과정을 자녀에게 겪게 하고 싶지 않고, 이 시스템은 아이들이 자라기에 건강한 시스템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들었다”고 버낼 박사는 말했다.

 

북한에서도 여성들이 현재 북한 사회에서 아이를 기르고 싶지 않다고 하는 점은 비슷할 것이라고 그는 분석했다. 평양이 아닌 곳에서는 특히 삶이 더 제한적이고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버낼 박사는 “남한에는 북한에 없는 언론·교육·이동의 자유가 있고 여성의 권리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발전돼 있지만 여전히 비슷한 문제(저출산, 아이 키우기 힘든 사회)를 안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저출생 문제가 심각한 북한은 최근 모성보호 정책을 홍보하는 움직임이 잇따라 포착되고 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국제 조산원의 날'(국제 조산사의 날) 행사가 지난 6일 평양산원에서 개최됐다고 7일 보도했다. 매년 5월 5일은 국제조산사연맹(ICM)이 제정한 국제 조산사의 날이다.

 

북한은 관영매체 보도 기준 2015년 처음으로 국제 조산원의 날 기념식을 열어 2019년까지 해마다 진행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중단했던 행사를 올해 5년 만에 재개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조산원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은 모성보호 정책이 잘 이뤄지고 있다고 홍보해 출산을 꺼리는 사회 분위기를 반전시키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북한 등 저개발국에서는 의료기관 밖에서 조산사가 출산 과정을 돕는 경우가 많다.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북한경제연구실 이주영 연구위원 등은 지난해 12월 내놓은 논문에서 탈북민 설문조사 등을 바탕으로 2010년대 북한의 출산율을 1.38명으로 추정했다. 이는 2020년 북한의 출산율이 1.79명이라는 유엔 추정치를 한참 밑도는 것이며 인구 유지를 위한 출산율(2.1명)에도 크게 못미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작년 12월 전국어머니대회에서 "출생률 감소"를 처음으로 언급한 배경에도 이런 위기의식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