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은 어머니만 하나요? 이렇게 하면 1만원 짜리 액상 3000원에 가능.” “담배 냄새 없어 엄빠(엄마·아빠)도 몰라요.”
한 유튜버는 ‘액상 김장’을 설명하며 “액상에 원료와 향료는 일상 생활에서도 쓰일 만큼 비교적 안전하다”며 구매를 부추겼다. 향료에 대해선 “과일맛 탄산 음료수에도 들어있다”고 말했다.
담배 규제를 받지 않고 ‘형식상’ 성인 인증만 거치면 누구나 쉽게 살 수 있는 담배가 있다. 바로 액상형 전자담배다. 액상형 전자담배에 주로 사용되는 ‘합성 니코틴’은 담배사업법 상 담배로 분류되지 않아 규제를 받지 않는다. 청소년들 사이에서 무분별하게 퍼질 우려가 있음에도 ‘공산품’ 탈을 쓴 채 버젓이 유통되고 있는 것이다. 액상형 전자담배가 법망 사각지대를 피해 몸집을 불리고 있는 사이 청소년 흡연율을 끌어올리는 ‘매개체’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터넷에 버젓이…청소년 흡연 부추기는 ‘액상 김장’
7일 유튜브 검색창에 ‘액상 김장’이라는 단어를 입력하자 수많은 영상이 검색됐다. 클릭하니 이른바 ‘김장’에 필요한 성분을 구매하는 방법부터 제조법까지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영상에 따르면, 전자담배용 액상에는 4가지 원료가 들어간다. 프로필렌글리콜(PG)과 식물성글리셀린(VG), 향료, 니코틴 원액이다. 시장에서는 수입 합성 니코틴이 액상형 전자담배 원료로 주를 이루고 있다. 이들 원료를 섞은 후 일주일간 랩에 싸 ‘숙성’ 과정을 거치는데, 바로 이런 이유로 ‘김장’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고 했다.
이성규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은 “요즘 청소년들은 ‘흡연’이라는 단어 대신, ‘베이핑’(vaping)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며 “기존 담배와는 다른 향과 디자인에 청소년들이 거부감 없이 담배에 중독되는 일종의 ‘관문’ 역할을 액상형 전자담배가 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화학성분을 ‘숙성’한다는 말 자체도 어불성설이다. 또 다른 유튜버는 액상형 전자담배의 장점을 싼 가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PG와 VG는 인터넷에서 ‘세트’ 구매하면 편리하다”며 “단, 니코틴은 오프라인 매장을 통해 구입하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실제로 합성 니코틴 역시 휴대폰이나 주민등록증을 이용한 간단한 ‘인증’만 거치면 청소년들도 어렵지 않게 살 수 있다. 한 인터넷 액상 판매자는 실제로 계정 소개란에 ‘신분증 없어도 가능’라는 문구를 넣기도 했다.
저렴한 가격도 청소년들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요소로 지목됐다. 유튜버의 말대로 액상을 검색하자 완제품 30ml 액상이 8000원부터 2만원대까지 판매되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를 따로 구매해 ‘김장’할 경우 3분의 1 가격에 불과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액상형 전자담배 흡연율 집계도, 유해성 분석도 ‘깜깜이’
합성니코틴 전자담배는 화학물질로 제조된 니코틴 액상을 기화시켜 에어로졸(하얀 수증기) 형태로 흡입하는 구조다. 기계를 이용해 흡입하는 특성상 폐 깊숙이 침투된다. 합성니코틴 액상 용액 상당수가 중국 등 해외에서 검증되지 않은 사업자로부터 생산·수입된 제품으로, 안정성 또한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소년 흡연율은 2020년 4.4%, 2021년 4.5%, 2022년 4.5%를 기록했다. 2016년 이후 6%대를 보이던 이 수치는 2020년 4%대로 떨어진 이후 큰 변동이 없다. 2019년 남학생 흡연율은 9.3%로 10%에 육박했다. 하지만 이 통계는 최근 30일 동안 1일 이상 일반담배(궐련)를 흡연한 사람의 분율이다.
현재 정부가 공식적으로 판매량을 집계하는 담배 종류는 궐련과 궐련형 전자담배 뿐이다. 통계 바깥으로 벗어난 ‘합성 니코틴’을 사용하는 액상형 전자담배 실태는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다. 질병관리청이 펴낸 ‘제18차 청소년 건강 행태조사 통계’에 따르면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률은 남학생의 경우 2020년 2.7%, 2021년 3.7%, 2022년 4.5%로 늘었으며 같은 기간 여학생은 1.1%, 1.9%, 2.2%를 보였다.
액상전자담배에 사용되는 합성니코틴 용액 수입은 매년 증가세를 나타냈다. 관세청에 따르면 2020년 56t에서 2021년 97t, 2022년 119t까지 늘었다. 합성 니코틴을 활용한 전자담배가 아무런 법적 제한 없이 흡연자들을 부추기고 있지만, 정부는 이들 담배에 판촉 광고를 규제하거나 단속할 권한이 마땅치 않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유해 물질 분석 같은 인체 안정성도 담보되지 않는다.
이 센터장은 “액상형 전자담배를 처음 접한 친구들은 특유의 담배 냄새가 나지 않아 담배로 인식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니코틴에 중독된 청소년들이 성인이 됐을 때 궐련형 담배로 옮겨가거나 때에 따라 둘을 다 피우는 ‘다중흡연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아울러 “기존 담배도 문제지만, 무분별하게 수입되고 있는 수입산 액상형 전자담배가 몸에서 어떤 반응을 일으킬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며 “청소년은 물론 국민 건강을 위해 관련 규제 마련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국내 액상담배 흡연자 집계 ‘0’명
화학적으로 제조한 ‘합성니코틴’ 액상 등은 담배에 해당하지 않는다. 현행 담배사업법 제2조제1호에 따르면, 담배란 ‘연초(煙草)의 잎을 원료의 전부 또는 일부로 하여 피우거나, 빨거나, 증기로 흡입하거나, 씹거나, 냄새 맡기에 적합한 상태로 제조한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들 제품이 ‘일반 담배’와 달리 온라인 판매 금지나 광고 및 판촉 제한, 담뱃갑 경고 그림 등의 규제에서 자유로운 것도 담배로 분류되는 제재를 받지 않아서다.
정부가 집계한 국내 흡연자 가운데 액상 전자담배 이용자 비중은 ‘0’이다. 궐련 담배처럼 중독성이 강하지만 판매량에 대한 공식 통계조차 없는 상태다.
2019년 보건복지부는 국내 기업에 액상형 전자담배에 대한 사용 자제를 요청한 바 있다. 당시 미국에서 ‘쥴(juul)’ 출시 이후 10대들의 전자담배 사용이 급증했고, 유해성 논란이 계속되자 보건복지부도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 중단을 권고했다. 이에 따라 편의점 등 판매처에서 액상형 전자담배 판매량은 90% 이상 급감했다.
정부는 액상형 전자담배의 수요가 궐련형 전자담배로 옮겨갔다고 봤다. 하지만 이는 합성 니코틴 용액 수입이 매년 늘어나고 있는 현실과 전혀 맞지 않는다. 현재 국내에는 합성 니코틴 액상을 판매하는 매장은 4000개가 넘는 것으로 추정되며, 서울 시내 곳곳에선 액상형 전자담배 자판기가 설치돼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미국은 2022년 연방 식품·의약품·화장품법을 개정해 합성 니코틴을 담배에 포함시키도록 규제하고 있다. 브라질, 호주, EU, 프랑스등도 자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유사담배 규제를 강화해 판매 및 수입 금지 조치 등을 시행 중이다. 세계적으로 액상형 전자담배 관련 규제를 도입하는 추세이지만 한국은 관련 정책이 느슨한 실정이다.
지난달 전자담배협회 총연합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정부는 전자담배총연합회를 비롯한 관련 단체화 협의체를 구성해 합리적인 전자담배 유행성 기준, 분석 방법을 조속히 수립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총연합회는“전자담배가 일반 담배보다 덜 해롭다, 더 해롭다는 해묵은 논쟁은 현재로서 무의미하다”며 “과학적인 데이터를 산출하고 유해 수준에 따른 합리적인 규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담배 정의를 확대해 합성 니코틴을 규제할 수 있도록 하는 담배사업법 개정안이 21대 국회 임기 만료 폐기를 앞두고 있다”면서 “22대 국회에서 개정안 논의 과정에서 일반·전자 담배에 대한 과학적인 유해성 분석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