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수 아저씨 안녕하세요.”
이달 3일 강원 화천군 화천커뮤니티센터 앞. 초등학생 대여섯명이 최문순 화천군수를 알아보고는 달려와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최 군수는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학교생활은 잘하고 있는지, 요즘 걱정은 없는지 등을 세심하게 물었다. 아이들은 학교 수업을 마치고 방과후 수업을 들으러 센터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친근한 동네 아저씨를 만난 듯 한동안 재잘재잘 자신들의 이야기를 늘어놓던 아이들은 다른 친구들을 만나자 “안녕히 계세요”라고 말하고는 센터로 뛰어 들어갔다.
최 군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센터를 찾는다. 아이들이 이용하는 데 불편한 점은 없는지 눈으로 확인해 점검하고 학부모들이 필요로 부분이 무엇인지 직접 들기 위해서다. 이날도 최 군수는 센터에서 자녀들 수업이 끝나길 기다리는 학부모들을 만나자 말을 건넸다.
◆전국 최초의 지자체 주도 돌봄시설 개관
지자체가 운영하는 전국 최초 온종일 돌봄 시설인 화천커뮤니티센터는 지난 3월 문을 열었다. 전체면적은 5131㎡(약 1500평)로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다. 센터는 개관 이후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17개 기관·단체에서 368명의 방문단이 찾았고, 최근에는 일본과 싱가포르 공영방송 취재진이 자국에 센터를 소개했다.
군은 센터가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는 이유로 10년간 철저하게 준비한 점을 꼽았다. 센터는 최 군수가 첫 임기를 시작한 2014년부터 구상됐다. 사업은 2019년 행정안전부 공모에 선정되면서 급물살을 탔다. 216억원을 투입해 착공 4년 만, 구상 10년 만인 지난해 말 완공했다.
센터의 핵심은 양질의 돌봄 서비스다. 초등학교 1·2학년생 80명은 학교수업이 끝나는 오후 2시30분부터 오후 7시까지 센터에서 방과후 수업을 듣는다. 아이들은 국내 교사와 원어민 강사들에게 영어 등을 배운다. 수업은 학생 열댓명에 강사 1명씩 소규모로 이뤄진다. 수업 내용은 서울의 유명 사립초등학교를 연구해 만들었다. 센터 2·3층에는 실내 체육관과 조리실 등을 갖췄다. 이날 조리실에서는 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월남 쌈을 만들고 있었다.
자녀들을 센터에 맡긴 맞벌이 학부모들은 매우 만족한다고 입을 모은다. 학부모 김모씨는 “센터가 초등학교와 1분 거리에 있다. 특히 아이가 센터에 들어가면 휴대전화로 알림 문자를 보내준다”며 “교육에 대한 걱정도 많이 해소됐다”고 말했다.
센터에서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을 위한 ‘영어 아카데미’도 운영된다. 학생들은 레벨 테스트를 거쳐 입문·기본·심화 반에 들어가 수준별 수업을 듣는다. 수업이 끝나면 스터디카페처럼 꾸며진 4층 독서실에서 공부한다. 독서실은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들도 많이 찾는다. 원어민 영어 수업을 비롯해 센터 이용료는 모두 무료다.
군 관계자는 “방과후 돌봄을 포함해 하루 700~800명의 학생이 센터를 이용하고 있다. 반응이 좋아 사내면에 두 번째 센터를 건립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아이 기르기 가장 좋은 화천 만들기’ 착착
센터는 화천군의 ‘아이 기르기 가장 좋은 화천 만들기’ 프로젝트 중 하나다. 군은 2014년 전국 지자체 중 처음으로 교육복지과를 신설한 뒤 임신·출산부터 돌봄, 교육까지 모든 과정을 책임지는 장기 로드맵을 만들고 착실하게 진행하고 있다.
군민들이 가장 먼저 접하는 임신·출산 지원책은 2022년 문을 연 공공 산후조리원이 대표적이다. 간호사, 조리사, 피부관리사 등이 최신 시설에서 산모와 신생아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 군민은 산후조리원 이용료 180만원을 모두 지원받는다. 개원 후 산모 200명 이상이 이용했을 정도로 호응이 높다. 지난해부터는 셋째 이상만 150만원 지급하던 출산장려금을 아이 1명당 300만원으로 올리기도 했다.
돌봄과 교육 대부분은 커뮤니티센터가 책임지게 됐으나 이외에 지원도 상당하다. 우선 매년 초·중학생을 선발해 3주간 해외 어학연수를 보내준다. 연수에 필요한 모든 비용은 군이 지원하고 자부담은 없다. 학생들은 현지에서 홈스테이를 통해 체류하며 정규 학교 수업에도 참여한다.
군은 서울 유명학원 출신 강사가 상주하는 학습관도 운영 중이다. 올해는 중학교 3학년 18명과 고교생 48명 등 66명이 수업을 듣고 있다. 학생들이 원하면 인근 기숙사에 머물며 공부할 수도 있다. 일종의 기숙학원으로 식비 30만원만 내면 모두 무료다. 대학에 진학하면 등록금을 전액 지원한다. 해외대학 학비도 준다. 화천에 대학이 없는 점을 고려해 매달 거주비도 50만원 한도 내에서 지급한다.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부모가 화천에서 3년 이상 살고 있으면 모든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효과는 점차 나타나고 있다. 과거엔 중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교육환경이 좋은 인근 춘천으로 ‘유학’을 떠나는 일이 잦았지만 확연히 줄었다. 최근에는 오히려 외지에서 화천으로 유학을 오고 있다. 지난해 화천지역 중학교 졸업생 대비 고교 입학생 비율은 103.8%였다. 중학생 100명이 졸업했는데 고등학교에는 103명이 입학했다는 의미다.
출산율도 고공행진 중이다. 2021년 1.2명에서 2022년 1.4명, 2023년 1.26명으로 전국 평균(0.72명)과 강원 평균(0.89명)을 크게 웃돌고 있다. 군은 화천에 정착하고 싶은 군인가족과 다른 지역에서 전입을 희망하는 이들을 위한 주택공급을 다음 목표로 잡고 추진 중이다. 통합공공임대주택 등 2000가구에 달하는 신규 공급을 준비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새는 둥지가 없으면 알을 낳아 품지 못한다. 보증금을 내면 적정한 수준의 월세만 내고 평생 살 수 있는 형태의 주택도 공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주택 구입에 필요한 금융지원책도 준비 중이다. 궁극적으로는 돌봄, 교육, 주거지원이 동시에 작동하는 체계를 만들어 시너지를 내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최문순 화천군수 “교육 소외 해소 위해 복지사업 131개 운영”
“지역이나 학교의 교육수준을 평가할 때 어느 대학에 몇 명을 보냈는지보다 사회에 공헌한 학생을 얼마나 배출했는지가 기준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최문순 강원 화천군수는 9일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최근 군수실에 봉투를 들고 찾아온 20대 청년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화천의 교육복지 사업을 통해 명문 대학에 진학하고 번듯한 직장에 취업했다고 했다. 최 군수는 “그는 화천군에서 혜택을 받아 성공했으니 이제는 마음을 나누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며 “공부는 물론 인성까지 가르치는 화천의 교육시스템이 점차 성과를 내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고 말했다.
최 군수는 민선 6기 선거운동 당시부터 화천을 최고의 교육도시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교육에 대한 그의 확고한 신념은 학창시절 경험이 배경이 됐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최 군수는 8㎞ 떨어진 중학교를 매일 걸어다녔다. 하루는 시험을 보는데 담임 선생님이 풀지도 않은 그의 시험지를 빼앗아 갔다. 등록금을 내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최 군수는 눈물을 훔치며 집으로 돌아가면서 가난이나 환경 때문에 공부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없게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그때의 다짐이 화천을 교육과 관련해 전국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지역으로 만들었다. 전국 최초로 교육복지과를 만들었고 대학등록금 전액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온종일 돌봄 시설인 커뮤니티센터도 전국 최초다.
최 군수는 “부모가 잘살면 좋은 환경에서 교육받고 부모가 가난해 교육받을 기회가 없다면 결국 빈곤이 대물림될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이어 “부모 경제력이나 환경에 영향 받지 않고 지역에서도 서울과 같은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만들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좋은 정책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다 보니 전국에서 처음 시작하는 제도가 많다”고 설명했다.
화천의 교육복지 사업은 131개에 달한다. 아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지원이 시작된다. 최 군수는 “아이들을 만나다 보면 소규모 지자체인 화천에 살아도 꿈을 결코 작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센터 앞 표지석에 ‘마음은 화천에, 꿈은 세계로’라는 글귀를 새겨 넣은 이유도 바로 그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향이 화천이라서 안 된다’가 아니라 ‘화천이라서 가능하다’는 생각이 아이들 마음속에 자라나고 있다”며 “이런 자긍심이 군정 성과 중 하나”라고 자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