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체류자 역대 최대… “생산효과 고려 합법적 기회 늘려야” [연중기획-소멸위기 대한민국, 미래전략 세우자]

정부 ‘체류 질서 확립’ 해법은

2023년 불법체류 42만명… 매년 증가세
국적별로는 태국인이 36% 가장 많아
최근 무조건적 ‘강제 퇴거’ 우려 시각
자진출국제 등 강온 전략 함께 구사

직간접 생산 효과 연 4조3512억 달해
법체계 내 노동력으로 활용 긍정 효과
특별허가 등 체류기회 확대 요구 커져
일각선 악덕 고용주 처벌 강화 목소리

1인 1000유로·가족당 최대 4000유로
강제 퇴거보다 재원 적게 들어 주목
佛도 이민법 개정해 체류 기반 확대
日, 단속 전담반 두고 자진 출국 유도

‘42만3675명.’

지난해 말 기준 국내 불법 체류 외국인 수다. 전체 체류 외국인 대비 비율인 불법 체류율은 16.9%로, 전년(18.3%)보다 소폭 줄었지만 인원 자체로는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 4월28일 서울 중구 서울역 광장에서 ‘근로자의 날(매년 5월1일)’ 집회에 참가한 이주노동자들이 “강제 노동 철폐”, “사업장 이동 자유 보장”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엔 비상이 걸렸다. 주무 부처인 법무부는 지난해 초부터 ‘외국인 체류 질서 확립’에 주안점을 두고 불법 체류자에 대한 관계 부처 합동 단속의 고삐를 조이며 강제 퇴거 등 출국 조처를 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자진 출국’ 제도로 불법 체류자들이 적발되기 전 스스로 떠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사용하는 ‘강온 전략’을 구사하는 셈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일정 요건을 갖춘 불법 체류자들이 합법적으로 체류할 기회를 확대할 필요도 있다는 제언이 나온다.

◆불법 체류자 증가 왜?

체류 만료일이 지났으나 출국하지 않은 불법 체류 외국인은 최근 3년간 증가세를 보여 왔다. 13일 법무부에 따르면 연도별로 2021년 38만8700명에서 2022년 41만1270명, 2023년엔 42만3675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국적별로 보면 지난해 전체 불법 체류자의 약 36%가 태국인이었다. 태국인이 15만2265명으로 가장 많았고, 베트남인은 7만9882명, 중국인이 6만4199명이었다. 이어 △몽골인 1만8524명 △필리핀인 1만3951명 △카자흐스탄인 1만3788명 △인도네시아인 1만1806명 △캄보디아인 1만920명 △러시아인 9339명 △우즈베키스탄인 8812명 등의 순이었다.

 

불법 체류자가 증가하는 것은 결국 ‘수요’와 무관하지 않다. 불법 체류는 불법 취업 문제와 맞물려 있다. 강성식 법무법인 케이앤씨 변호사는 “불법 체류자들이 생기는 건 본국보다 한국에서 벌 수 있는 돈이 훨씬 많기 때문”이라며 “이는 한국에서 그 사람들을 쓰려는 수요가 있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법무부는 “관광객 유치 등 입국 문호 확대, 본국과의 임금 격차, 산업 현장 생산 인력 부족, 만기 도래 외국인 근로자의 미출국이 주요 원인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불법 체류자는 올해 들어 감소세로 돌아섰다. 지난 1월 42만3085명에서 2월 41만9174명, 3월엔 41만9040명으로 계속 줄어들고 있다.

이는 정부의 불법 체류자 단속 강화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법무부는 지난해 초 업무 보고에서 2027년까지 ‘불법 체류 감축 5개년 계획’을 추진해 불법 체류자를 절반인 20만명대로 감축하겠다고 천명했다. 이를 위해 지난해 3차례에 걸쳐 경찰청과 고용노동부, 국토교통부, 해양경찰청과 정부 합동 단속을 벌여 불법 체류자 3만8000여명을 단속했다.

정부는 올해도 엄정 대응 기조를 이어 간다. 지난달 15일부터 다음 달 30일까지 올해 첫 정부 합동 단속을 실시한다. 마약 등 범죄, 유흥업소 종사자, 건설 업종 불법 취업, 불법 입국이나 취업, 허위 난민 신청을 알선하는 행위를 중점적으로 단속한다.

 

◆무조건 강제 추방은 안 해

불법 체류자가 단속에 적발되면 무조건 강제 추방, 즉 ‘강제 퇴거’ 조치하진 않는다.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지방출입국·외국인관서의 장은 불법 체류자 등 강제 퇴거 대상자가 도주하거나 도주할 염려가 있으면 최장 20일간 보호를 명령해 조사한 뒤 처분한다. 조사 결과에 따라 강제 퇴거를 명령해 집행하거나 출국 명령 또는 출국 권고로 출국하게 한다.

출국 권고란 체류 기간과 자격 등을 위반한 정도가 가벼운 외국인에게 자진 출국을 권고하는 것이다. 출국 권고서를 발급한 날부터 5일 이내로 출국 기한을 정할 수 있다. 출국 명령은 자진 출국하려는 강제 퇴거 대상자, 출국 권고를 받고도 이행하지 않은 외국인 등이 대상이다. 출국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강제 퇴거가 명령된다.

법무부는 불법 체류자에게 강제 퇴거를 명령할 때 입국 금지 여부도 결정한다. 법무부 장관은 강제 퇴거 명령을 받고 출국한 뒤 5년이 안 된 외국인 등의 입국을 금지할 수 있다. 법무부는 “입국 금지 기간 등에 대한 구체적 기준은 비공개”라며 “불법 체류자 처리 현황은 별도로 관리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법조계에선 당사자에게 이의신청 등 권리가 제대로 고지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의신청 건수가 적은 주된 이유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강제 퇴거 명령과 강제 퇴거를 위한 보호에 대한 이의신청은 각 110건, 21건에 그쳤다. 이 중 인용된 것은 없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이의신청이나 행정심판, 행정소송으로 불복할 수 있다는 점을 고지받지 못한 경우도 있더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영어, 중국어, 베트남어, 태국어, 몽골어 등 19개 언어로 번역한 고지문을 외국인에게 제시하고 있다”며 “또 9개 언어로 된 입·퇴소 종합 안내서를 보호실에 비치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사진=연합뉴스

◆체류 허가 확대를… 경제 기여 방안

법무부는 불법 체류자 단속을 강화하는 한편, 자진 출국 제도로 출국을 유도하고 있다. 이는 불법 체류자가 출입국 관서에 스스로 방문해 자진 출국을 신고한 뒤 출국하는 제도다. 지난해 9월11일부터 올해 2월29일까지 특별 자진 출국 기간 동안 불법 체류자 2만4000여명이 한국을 떠났다. 범칙금 면제와 입국 규제 유예란 혜택을 준 덕분이다.

법무부는 불법 체류자의 사정을 참작해 체류를 허가하기도 한다. 법무부 장관은 강제 퇴거 명령에 대한 이의신청이 이유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라도 한국 국적을 가졌던 사실이 있거나, 그 밖에 한국에 체류해야 할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인정되면 체류를 허가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법무부는 지난해 강제 퇴거 명령에 이의신청을 한 46명에게 특별 체류를 허가했다.

법무부는 “특별한 사정은 외국인의 국내 생활 기반 형성 여부, 가족 동거 및 체류 행적, 체류 필요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판단하고 있다”며 “특별 체류 허가 기간은 별도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불법 체류자들에게도 체류 허가 기회를 주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은 지난해 말 펴낸 연구 보고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 출입국 관리의 형사 정책적 대응 방안’에서 “불법 체류 외국인들은 낮은 인건비를 받고 국내 노동자들이 기피하거나 노동력이 부족한 업종 등에 종사해 국민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것도 사실”이라며 “불법 체류 외국인의 불법행위는 엄격하고 공정하게 관리함과 동시에, 이들이 합법적인 외국인 근로자로 우리 경제에 기여할 기회를 보장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실제로 불법 체류자 채용으로 인건비가 절감되고 직간접 생산이 증가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연구원이 산업 연관 분석을 한 결과, 불법 체류 외국인 근로자 투입을 통한 직간접 생산 증가 효과는 연간 4조3511억52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해 연구원은 “불법 체류 외국인 근로자는 우리가 감내할 수 있는 법체계 내에서 최대한 노동력으로 활용하는 것이 사회경제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국민 사이에서도 긍정적 여론이 없지 않다. 연구원이 지난해 10월 성인 500명에게 불법 체류 외국인 유입에 관한 의식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 51.8%가 ‘강경 단속 정책’을 선호하면서도 ‘범죄나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불법 체류자에게 체류 기회를 주는 것’에 대해 67.2%가 ‘노동력 부족을 보충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라고 답했다.

한편으로는 악덕 불법 고용주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강성식 변호사는 “불법 체류자를 대규모로 고용한 게 아니면 범칙금만 내고 끝나는데, 범칙금은 행정처분이라 전과가 남지 않는다”며 “고용주들은 바로 형사 절차로 넘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법무부 산하 인천공항출입국·외국인청 도심공항출장소 모습. 한국도심공항 홈페이지

◆자진 출국자에 보조금 지급… 독일, 고국 정착까지 도와

 

불법 체류 외국인 문제로 오랜 기간 골머리를 앓고 있는 주요 국가들도 대부분 ‘자진 출국’에 방점을 두고 있다. 프랑스는 올 초 개정 이민법을 공포하며 불법 체류자가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13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의 연구 보고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 출입국 관리의 형사 정책적 대응 방안’과 ‘외국인정책 선진화를 위한 거버넌스 재구축’ 등에 따르면, 독일은 재정적 지원으로 불법 체류자나 강제 퇴거 대상자의 자진 출국을 유도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재통합·이주 프로그램(REAG) 또는 송환 프로그램(GARP)을 통해 자진 출국자 1인당 1000유로(약 147만원), 가족당 최대 4000유로의 보조금 등을 지급해 고국에서의 정착을 돕는다. 귀국 후 3개월까지 의료비로 최대 2000유로도 지원한다. 연구원은 “(독일 정부에) 이 정책은 강제 퇴거보다도 재원이 적게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이웃 나라 일본은 우리나라처럼 불법 체류자 단속과 자진 출국을 통한 감축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 출입국재류관리청은 불법 체류자가 많은 지역의 출입국 관서에 단속 전담반을 두는 한편 ‘출국 명령’ 제도를 시행 중이다. 스스로 출국할 의사가 있는 불법 체류자는 이 제도에 따라 간단한 절차를 밟으면 시설에 수용되지 않고 출국할 수 있다.

 

프랑스는 올해 1월 이민 개혁을 통해 이민 규제를 강화하면서도, 노동력이 부족한 건설, 돌봄, 요식 등 업종에 종사하는 불법 체류자가 고용주를 통하지 않고도 체류 허가를 자율적으로 신청할 수 있게 했다. 다만 프랑스에 3년 이상 체류해 지난 2년간 최소 1년 연속으로 해당 업종에서 일했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이 조치는 2026년 말까지 3년간 시범 운영될 예정이다.

 

미국에선 불법 이민자 문제가 올해 11월 대선의 주요 이슈 중 하나로 떠오르면서, 조 바이든 행정부가 최근 이민 포용 정책 기조를 버리고 전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기조를 따라가는 모양새다. 불법 이민자 유입을 막기 위해 멕시코와의 국경 통제를 강화하는 게 대표적이다. 멕시코는 미국과 유일하게 국경을 맞대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은 “주요 국가들은 불법 체류 외국인에 대한 정책 추진 방향이나 인권 등을 둘러싼 거시적 관점의 접근보다는, 현 상황에 대한 즉각적인 대응책으로 불법 체류 외국인 정책을 운용하고 있다”며 “이런 접근 방식은 포퓰리즘 정책으로 추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