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에 사는 최모(71)씨는 한 달에 국민연금으로 65만원을 받고 있다. 젊었을 때 자영업을 했던 최씨는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비교적 짧다. 건설업 일용직으로 생활비를 벌고 있는 최씨는 “연금 가입 기간이 17년 정도”라며 “노후 소득을 늘리기 위해서라도 가급적 일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 서울 양천구에 사는 이모(42)씨는 130만원에 가까운 원리금을 매달 내고 있다. 2년 전 아파트 계약 과정에서 2억6000만원 정도 대출을 받은 것. 그는 최근 들어 물가도 뛰고, 초등학생 아이 교육비에도 돈이 많이 들어 걱정이 많다. 이씨는 “결혼 때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거의 받지 않았다”며 “소득은 그대로인데 쓸 돈은 많아져 외식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고 털어놨다.
캐나다 등 주요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고령이 되면 소득 불평등도가 더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금제도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은퇴 후 연금이 없거나 적은 금액만 수령하는 이들이 많은 탓이다. 1980년대 이후에 태어난 세대는 부모로부터 자산을 물려받은 이들과 그렇지 못한 계층 사이의 ‘부의 대물림’ 격차가 커지면서 이전 세대보다 소비 불평등은 확대된 것으로 분석됐다.
13일 경제계에 따르면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지난 1월 한국경제포럼에 이런 내용을 담은 ‘고령화와 소득 및 소비의 불평등’ 논문을 발표했다. 김 교수는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의 마이크로데이터를 이용해 ‘연령’(20∼75세 가구), ‘코호트’(같은 해 출생 그룹, 1930∼1995년)와 ‘조사연도’(1990∼2022년)의 경제 상황 등이 소득·소비 불평등에 미친 효과를 추정했다.
그 결과 고령이 되면 소득 불평등이 더욱 빠르게 높아지는 연령효과가 확인됐다. 캐나다는 은퇴 후 계층 간 격차가 작은 공적연금 의존도가 커 불평등도가 떨어졌는데, 한국에선 반대 상황이 연출된 셈이다.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전체 노령연금(수급 연령에 도달해 받는 일반적 형태의 국민연금) 수급자(546만4673명) 중 68.5%(374만5084명)는 월 60만원 미만을 받고 있다. 김 교수는 “공적 연금제도가 정비된 경우 연금 소득자가 다수가 되면 이들 간 불평등은 은퇴 전보다 줄어든다”며 “한국은 제도가 성숙 못 해 은퇴 후에도 연금이 없거나 수령액이 미미한 자들이 많다. 연령의 불평등 효과가 높은 것이 인구 고령화의 빠른 진행과 결합되면 사회 전체의 불평등이 확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사 결과 소비 불평등은 1950년대에서 1970년대 출생 그룹까지 낮아졌지만 1980년대 이후에는 오히려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그 원인으로 증여를 통한 세대 간 이전 효과에 주목했다. 결혼하면서 부모로부터 주택이나 전세금을 증여받은 경우와 그러지 못해 대출 원리금을 갚아야 하는 경우를 비교하면 후자에서 소비지출의 제약이 크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한국에선 증여를 통한 부의 세대 간 이전 규모가 지난 20여년간 급속히 커졌다”고 밝혔다. 실제 국세청 징수 실적에 따르면 1995년 이뤄진 전체 증여재산 가액은 국내총생산(GDP)의 0.8%에 그쳤지만 2021년에는 5.6%로 올랐다. 김 교수는 “고도 성장기를 거치면서 부를 축적한 부모 세대가 그 일부를 자녀들에게 이전해 자녀 세대에서 (소비) 불평등이 확대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사 결과 여러 거시경제 변수 중 고용 증가, 실업 감소가 주로 소득 불평등을 낮추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