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최초 개최하는 ‘한·아프리카 정상회의’가 다음 달 4, 5일 이틀 동안 서울에서 열린다. 그동안 각료급으로만 유지됐던 협의체가 처음 정상급으로 격상됐다는 의미가 크다. 최근 국제 사회에서 전략적 요충지로 떠오른 ‘글로벌 사우스’(주로 남반구에 있는 개발도상국)의 중심으로 아프리카에 이목이 쏠린 가운데 한국이 주도하는 대형 이벤트이기도 하다.
아프리카에 대한 국내외적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지금 한·아프리카재단 여운기 이사장을 만났다. 경력 34년의 직업 외교관 출신인 여 이사장은 2021년 제2대 한·아프리카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해 한국과 아프리카 지역 국가들과의 교류와 협력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8일 서울 서초구 외교타운의 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여 이사장은 이번 정상회의에 “이미 많은 국가가 참석 의사를 밝혔고 계속 늘어날 것으로 생각된다”며 “정상회의 개최는 기존 협력 관계를 한 단계 끌어올리려는 상호 의지의 결실”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여 이사장과의 일문일답.
―한·아프리카 정상회의 의미와 준비 상황은.
“세계의 웬만한 중견급 국가들은 아프리카 국가들과 대체로 정상급 협의체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각료급으로만 유지하다가 이번에 처음 정상급으로 업그레이드했다. 다소 늦은 편이다. 이번에 한국이 정상급 회의를 한다고 하니 안팎에서 관심을 많이 표명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유엔 가입국이 54개인데 이 중 40개국 넘게 참석 의사를 보이는 분위기다. 정상 및 정상급, 장관급 등 참석 수준에 차이는 있지만 예상보다 많은 국가가 호응을 보내고 있다. 한 세대 만에 최빈국에서 선진국에 진입해 정상급 회의를 한다는 점에서 한국은 다른 나라와 다르다는 인식을 아프리카 국가들이 가지고 있는 만큼 기대에 부응하는 준비가 필요하다.”
―한·아프리카재단은 어떤 곳인가.
“2010년도부터 아프리카의 경제적 중요성이 부각되고 외교 다변화 얘기가 나오면서 정부 조직 내에서 인프라를 강화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국회에서 2013년 ‘아프리카 새시대포럼’이란 그룹이 생겨났고, 5년에 걸쳐 재단 설치법이 통과됐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2018년 6월 공식 출범했다.
재단 업무는 한마디로 정부와 민간, 그리고 기업 간 교류 협력을 촉진하기 위한 여러 사업을 운영하는 것이다. 포럼과 세미나, 박람회 참석은 물론 스타트업 경진대회를 통해 젊은 사업가들을 선발해 키우고 차세대아프리카전문가(YPA)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YPA는 아프리카 내 국제기구 등에 한국 청년을 파견해 문화와 업무를 배우며 국제 진출을 촉진하는 프로그램으로 현재 연간 3명을 선발한다.”
―YPA에 대해 좀 더 듣고 싶다.
“현지에 인턴십으로 파견돼 프로젝트에 직접 참가하며 일하는 것이다. 올해는 모로코에 있는 이슬람교육과학문화기구(ICESCO), 코트디부아르에 있는 글로벌녹색성장기구(GGGI) 아프리카권역사무소, 르완다에 있는 글로벌녹색성장기구(GGGI) 아프리카권역사무소에 각각 1명을 파견했다. 파견 직원으로 연단위로 계약하는데 이후 현지 고용돼 국제기구 일을 계속하는 경우도 있다. 1년의 경험이지만 동기부여가 된다고 들었다. 결국 예산이 관건인데, 앞으로 10∼20명까지 보낼 수 있도록 확대하는 게 우리의 목표다.”
―한국과 아프리카의 교류 상황은.
“아직 교역량이나 투자는 아주 미미하다. 우리나라 전 세계 무역량 중 아프리카 비중은 1% 내외라 갈 길이 멀다. 발전 잠재력으로는 무궁무진하다. 한국과 교류를 원하는 아프리카 국가들은 원조보다는 현지에서 우리가 공장도 짓고 제조업을 활성화해 일자리를 창출해주길 바란다.
지구상 두 번째로 넓은 대륙에 50여개 나라가 포진한 아프리카는 자연환경, 문화, 인종 분포가 지역에 따라 다 다르다. 재단 조사연구부에서 그런 지역별 특징을 연구하고 어떤 전략과 분야로 교류할지 고민하고 있다. 최대한 아프리카 각국의 니즈에 맞춰 진출 계획을 수립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아프리카에 대해 우리 국민도, 기업도 잘 모른다. 성급한 투자로 손해를 볼 수도 있기 때문에 재단에서 상담을 통해 믿을 만한 현지 파트너를 소개하기도 한다.”
―왜 지금 아프리카인가.
“아프리카는 ‘지구의 마지막 성장 동력’이라 불릴 만큼 젊고, 성장 잠재력이 풍부한 지역이다. 중위 연령 18.8세, 인구 70%가 만 30세 이하 청년이다. 지난해 경제성장률(3.2%)은 세계 경제성장률(2.9%)을 넘어섰다. 세계 곳곳에서 급감 중인 인구도 아프리카에선 2050년 20억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도시 인구가 늘면서 소비자 구매력도 높아지고 있다. 우리가 절대 놓쳐선 안 되는 시장이다.
미국, 중국, 인도를 합친 것보다 큰 아프리카 대륙에는 방대한 자원이 매장돼 있다. 공급망 위기에 직면한 지금 4차 산업혁명에 필수적인 광물자원도 풍부하다. 경제적 중요성이 더욱 부각됐다. 예전 아프리카 이미지와 달리 디지털 시대 아프리카는 완전히 다르다. 핀테크 산업에서 빠른 성장이 눈에 띈다. 아날로그 인프라가 부족했던 점이 오히려 중간단계를 뛰어넘는 ‘디지털 가속화’로 이어졌다. 10여년 전 가나 대사로 근무할 때 이미 현지인들이 모바일 뱅킹을 하고 있었고, 드론으로 결혼식 장면을 촬영하는 걸 보고 놀랐다. 매년 기업가치 10억달러를 넘어서는 유니콘 스타트업이 등장하고 있는 곳이 바로 아프리카다.”
―중국과 아프리카의 교류가 활발하다.
“현재 아프리카는 중국을 빼고는 얘기할 수 없다. 중국은 아프리카 내 지하자원을 수입해 경제발전에 활용하면서 지금의 중국으로 성장했다. 아프리카의 산업적 측면을 볼 때 대륙의 각국이 중국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우리나라와 같은 후발 진출국들이 광물 확보 경쟁에서 뒤처지게 됐다. 우리가 비록 진출은 늦었어도 희망은 있다. 중국이 많은 인프라를 건설해줬지만, 결과적으로 부채 문제나 사회 부작용도 크다. 그만큼 한국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아프리카에서 한국의 이미지는.
“오랫동안 아프리카 전문가로 활동해왔지만 한국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표출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한국에 맡기면 사업 결과물과 상품의 품질이 가격 대비 좋고, 부정부패도 없이 투명하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다만 아직은 국내에서 아프리카에 대한 막연한 리스크를 두려워하고 아프리카에 대해 잘 모르는 탓에 선뜻 나서는 기업을 찾기가 어려운 것이 안타깝다.”
―아프리카에 접근하는 우리만의 차별화 전략은.
“우리나라는 아프리카의 정치 민주화와 경제발전에 가장 큰 영감을 줄 수 있는 나라다. 아프리카의 번영을 향한 여정에 좋은 참고가 될 수 있음을 어필할 수 있다. 타국을 식민지배한 경험이 없다는 점도 우리를 신뢰할 만한 협력 파트너로 인식시킬 수 있다. 이때 원조 대상이 아닌 동등한 사업 파트너로서의 접근이 필수다. 사업 분야로는 정보기술(IT), 섬유업계, 의료보건 쪽 진출 여지가 많아 보인다. 백신 공장 등과 관련해 르완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쪽에서 얘기가 오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사장으로 보낸 지난 3년의 소회는.
“초반에는 신생 조직으로서 미흡한 제도 정비와 안정화에 노력을 기울였다. 한국국제교류재단(KF) 초청 등으로 그간 많은 아프리카 인사가 방한했고, 만남도 가졌다. 재단의 소개로 그들과 국내 고위 인사들의 네트워킹이 가능해졌다. 이런 인적 자원을 경제·정치적으로 잘 살려서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간 차원 협의체를 만들고 싶은데 예산 확보가 쉽지 않았다. 인적 지배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아프리카의 체제에서 비공식 접근은 상당히 중요하다. 부산 엑스포 실패에는 그런 내면적 접근이 약했던 측면도 있다. 정부 차원에서 더 큰 시각을 갖고 국가적으로 큰일이 있을 때 유효하게 활용할 인적 네트워크를 조직할 필요가 있다.”
여운기 한·아프리카재단 이사장은…
●1960년 강원도 춘천 출생 ●한국외대 독일어과 학사 ●아일랜드 더블린 국립대학교 정치경제학 석사 ●1990년 외무부 입부(제24회 외무고시) ●외교안보연구원 기획조사과장 ●주카타르공사참사관 ●아프리카중동국심의관 ●주가나대사 ●국립외교원 교수부장 ●주아일랜드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