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A씨는 2021년 1월과 2월 농협은행에서 홍콩H지수 기초 주가연계신탁(ELT) 2건에 가입하면서 5000만원을 입금했다. 당시 농협은행은 고위험 상품인 ELT 가입을 유도하면서도 투자 성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A씨를 ‘공격적 투자자’로 분류했다. 손실 위험 시나리오도 20년간 자료로 설명해야 하지만 기간을 축소한 채 A씨에게 안내했다.
ELT는 원금 손실 위험이 있는 상품이지만 통장 겉면에는 확정금리를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오인할 수 있는 내용까지 기재됐다. A씨는 계약서 서명란에 서명 대신 ‘서명하세요’라고 적었는데, 은행은 이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상품을 판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감독원은 13일 금융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를 열어 국민·신한·농협·하나·SC제일 등 5개 판매 은행과 고객 간 홍콩H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ELT, 주가연계펀드(ELF) 불완전 판매 분쟁 사안 중 대표 사례에 대해 투자 손실 배상비율을 30∼65%로 결정했다고 14일 밝혔다.
2021년 3월25일 이후 판매된 ELS 상품에선 신한·하나은행은 적합성 원칙을 지켜 기본배상비율이 20%로 산정됐지만, 국민·농협·SC제일은행은 적합성 원칙과 설명의무를 모두 위반해 30%로 높아졌다.
기본배상비율에 더해 판매 금융사가 증권인지 은행인지, 가입 방법이 대면인지 비대면인지에 따라 배상비율이 3~10%포인트 가중된다. 더불어 손실 고객이 본래 예·적금 가입 목적이었는지, 금융취약계층인지 등에 따라 최대 45%포인트 가산될 수 있다. 반대로 과거 ELS 투자 경험, 수익 규모 등에 따라 역시 45%포인트까지 차감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기타 조정을 통해 최대 10%포인트 가감 후 최종 배상비율이 결정된다.
금감원이 발표한 다른 대표 사례를 보면 2021년 2월 국민은행에 암보험 진단비를 정기예금으로 예치하러 왔다가 ELT에 가입한 40대 고객은 기본배상비율 30%에 예·적금 가입 목적(10%포인트), ELS 최초 투자(5%포인트) 등 30%포인트가 가산돼 최종 60%로 결정됐다. 분쟁 조정은 당사자가 20일 내 수락하면 성립한다.
분조위 결정에도 손실액 100% 배상을 주장하는 이들은 다음달 중 판매 은행들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진행할 계획이다. 길성주 홍콩H지수 ELS피해자모임 위원장은 “피해자 600여명이 모여 증거를 취합하고 있다”며 “현재 법무법인을 선임했고 준비 절차를 거치면 내달 중 소송이 시작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투자자들과 자율 협상을 진행 중인 은행은 대표 사례 발표를 반기는 모양새다. 한 관계자는 “고객 입장에서는 은행들의 자율 배상안을 받더라도 금감원의 배상안보다 좋은지 나쁜지 판단할 기준이 없었는데, 이번 분쟁조정 결정으로 자신이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있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