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급속하게 발전하면서 우려했던 AI로 인한 ‘폐해’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 ‘딥보이스’(음성 변조·복제·합성 기술)를 활용한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14일 부산 금정경찰서에 따르면 부산에 사는 60대 여성 A씨는 최근 휴대전화에 저장된 딸 번호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를 받고 하마터면 수천만원을 잃을 뻔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이달 8일 오후 1시30분쯤 부산 금정구의 한 은행에서 다급하게 현금 2000만원을 인출했다.
안절부절 못하는 A씨의 모습에 보이스피싱 범죄를 의심한 은행 직원이 나직한 목소리로 A씨에게 “경찰의 도움이 필요하느냐”고 물었고, A씨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은행원은 즉시 112에 보이스피싱 의심 신고를 했고, 출동한 경찰이 보이스피싱 조직 60대 현금 수거책을 공갈미수 방조 혐의로 현장에서 붙잡았다.
A씨는 “딸이 (전화로) ‘친구 보증을 섰는데, 친구가 연락이 되지 않아 잡혀 왔다’고 말해 급히 돈을 찾기 위해 은행으로 달려왔다”고 말했다. 딸의 휴대전화 번호로 걸려온 목소리에 속아 2000만원을 인출해 보이스피싱 조직원에게 넘겨주려던 A씨는 다행히 은행원과 경찰관의 도움으로 사기 피해를 모면할 수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딸이나 아들 등 가족의 목소리를 AI 딥보이스로 흉내를 내는 바람에 주로 어르신들이 속는 것 같다”며 “보이스피싱 범죄가 날로 진화하면서 AI를 활용한 보이스피싱이 기승을 부릴 것으로 예상돼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 1일 강원 홍천군에서도 50대 산후도우미 B씨가 ‘아들’로 표시된 전화번호에다 딥보이스에 속아 거액을 날릴 뻔했다가 현직 경찰관의 기지로 피해를 막았다. B씨는 사건 당일 오전 9시쯤 산후도우미로 처음 출근해 일을 시작하려는 순간 ‘아들’로 표시된 휴대전화를 받았다. B씨 아들은 “(돈이 급해) 사채를 썼다가 갚지 못해 감금당했는데, 지금 바로 2000만원을 줘야 풀려날 수 있다”며 “절대로 전화를 끊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B씨는 당시 집에 함께 있던 아기 아빠 C씨의 휴대전화를 빌려 가족에게 이 사실을 알린 뒤 C씨에게 “급한 일이 생겨 집에 가봐야겠다”고 말했다. 홍천경찰서 소속 경찰관인 C씨는 전날 당직 근무를 마치고 집에서 휴식하던 중 B씨로부터 급한 일이 생겼다는 얘기를 듣고 B씨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차례에 걸친 전화에도 계속 통화 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것을 확신하고, B씨 남편에게 보이스피싱이라는 사실을 알려 피해를 면할 수 있었다.
보이스피싱 범죄가 언론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국민 대부분이 저장된 번호가 아니거나, 모르는 전화번호로 걸려오는 전화를 받지 않자 AI를 접목한 신출한 방법으로 사기행각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휴대전화 뒷번호 8자리가 일치할 경우 전화번호부에 저장된 같은 번호로 인식하는 허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권기룡 부경대 교수(컴퓨터·인공지능공학)는 “챗GPT가 급격하게 발전하고, 특히 생성형 AI기술이 발전하면서 보이스피싱 등 범죄에 악용될 여지가 크다”며 “타인의 목소리 톤을 변조해서 특정인의 목소리로 바꿀 수도 있기 때문에 앞으로 사회적 문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