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농산물 유통과정에서 발생하는 비효율적 물류기기 이용 실태 개선에 나선다. 독과점 형태로 운영되는 물류기기 시장을 경쟁체제로 개편해 생산농가의 안정적 출하를 지원하기 위해서다. 이를 통해 과도한 농산물 유통비용까지 잡겠다는 취지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수산물 유통구조 개선을 위해 물류기기 공동이용 사업을 진행 중이다. 현재 농산물 유통과정에서 필수인 팰릿을 생산·관리하는 시장은 독과점 체제로 굳어지고 있다. 더구나 농산물 출하가 집중되는 성출하기에는 산지에 원활하게 공급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대형마트를 비롯한 유통업체가 자사와 관리 계약을 맺은 업체의 팰릿이나 매장에서 직접 사용할 수 있는 규격의 플라스틱 상자만 납품하도록 요구하고 있어 산지유통 주체는 비싼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특정 업체의 물류기기를 임대해 사용할 수밖에 없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물류기기 시장은 외부에서 보기에 민간 기업(풀 회사) 6개사가 참여해 경쟁하고 있다고 보이지만, 실상은 이 중 3개사를 계열사로 둔 그룹사 1곳이 독점하고 있는 체계”라며 “물류기기 임차료를 입금해야 사후 국가보조가 정산되는 만큼 물류기기 공급회사들이 기기 회수 및 대금 정산 측면에서 큰 위험 부담 없이 쉽게 사업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는 농가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물류기기 공동이용 사업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이 사업은 연합사업단·영농조합법인 등이 공영 도매시장이나 종합유통센터에서 농산물 출하 시 팰릿당 임차료의 40%(2970원)를 지원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다만 재원 부족으로 산지 수요의 40% 정도만 이 같은 지원을 받고, 나머지는 산지에서 고스란히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지원 사업이 폐지 위기에 몰렸다는 점이다. 기획재정부가 도매시장 팰릿 하차 거래 의무화로 지원 사업의 목적이 달성됐다며 예산 삭감을 추진하고 있는 탓이다. 지원 대상이 확대된 1997년부터 최근까지 예산 4200억원이 투입됐는데, 이 같은 정부 보조금이 물류기기 업체에만 집중된 구조적 문제도 예산 삭감 추진의 배경으로 꼽힌다.
이에 따라 농식품부는 정부지원 사업 참여 업체를 상대로 모든 농산물 물류기기 이용료 시스템(aTPool) 등재를 의무화하는 ‘물류기기 이용가격 공시제도’를 도입한다는 방침이다. 출하자가 가격을 비교해가면서 보다 저렴한 물류기기를 이용할 수 있도록 돕는 조치다.
농식품부는 더불어 유통업체와 협업을 통해 농산물 플라스틱 상자 규격을 표준화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앞으로 농협이 물류기기 시장에 참여해 독과점 체제에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농협경제지주가 신규출자 방식으로 농협물류를 통해 물류기기 사업을 수행하면 정부에서 팰릿 제작 등 물류 인프라 구축을 지원하기로 했다.
농식품부는 아울러 지방자치단체와 공동 재원을 확보해 전체 농업용 팰릿 물량에 대한 보조단가도 유지한다는 계획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물류기기 이용 지원 사업이 중단되면 농가 부담이 커지고, 이는 소비자 가격 부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농가 경영안정과 물가안정 차원에서라도 사업 구조의 전환이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