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인류에 선사할 미래는 장밋빛일까. 최근 몇 년 사이 진일보한 AI 기술은 앞으로 우리의 삶을 완전히 뒤바꿀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때문에 정보기술(IT)업계 공룡들은 앞다투어 AI 기술 선점을 위해 투자계획을 발표하고, 각국은 AI 패권경쟁에 나섰다. 뉴욕타임스(NYT)는 올해를 ‘빅테크 AI 투자 원년’으로 전망하며 “AI 경쟁은 곧 막대한 규모의 기술 인프라 구축 경쟁”이라고 진단했다.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가 짙어지듯 AI를 경계하고 통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는 모습이다. 워런 버핏은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열린 버크셔해서웨이 연례 주주총회에서 “핵무기를 개발할 때 ‘램프에서 지니를 꺼냈다’고 말한다”며 “AI도 지니와 어느 정도 비슷하다”고 말했다.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버핏이 AI를 핵무기에 비유해 그 ‘파괴력’과 ‘위험성’을 시사한 셈이다. 알렉산더 샬렌베르크 오스트리아 외교장관은 지난달 29일 빈에서 개최된 자율무기시스템 관련 콘퍼런스에서 AI 시대를 앞둔 지금 상황을 “우리 시대의 오펜하이머 순간”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1945년 원자폭탄 개발을 주도한 후 핵무기 확산 통제를 주장했던 인물이다.
◆AI 인프라에 수십조원 쏟아붓는 빅테크
◆AI 분야에서 미국 독주… 국가별 격차 커져
현재 AI 기술을 주도하고 있는 빅테크는 대부분 미국 회사다. 미국이 AI 기술 패권에 한발 앞서 있는 이유다. 미국은 막대한 자본력과 인력을 동원해 다른 국가들과의 격차를 더욱 벌리는 추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가 2월 발간한 ‘우리나라 및 주요국 AI 기술 수준의 최근 변화 추이’ 보고서에 따르면 AI 분야의 전반적 기술 수준은 2022년 기준 미국(100%)이 가장 높았다. 이어 중국(92.5%), 유럽(92.4%), 한국(88.9%), 일본(86.2%) 순으로 나타났다. AI 분야 선도 국가인 미국의 기술력을 100%로 놓고 각 국가별 수준을 상대 평가한 결과다.
봉강호 SPRi AI정책연구실 선임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전년(2021년)과 비교했을 때, 미국 대비 주요국의 상대적 기술 수준이 모두 저하된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미국이 세계 최고기술 보유국의 자리를 유지하면서 주요국과의 기술 수준 격차를 벌린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변화 추이로 보면, 우리나라는 최근 5년 사이 기술 수준이 주요국 중 가장 크게 발전한 국가”라면서 “일본의 경우, 과거 5년 전과 비교했을 때 미국 대비 상대적 기술 수준이 오히려 저하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영국 데이터분석 미디어 ‘토터스 인텔리전스(Tortoise Intelligence)’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글로벌 AI 지수’에서도 미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압도적으로 앞선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은 인재, 인프라, 연구수준, 특허(개발), 민간투자 부문 등 총 5개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며 종합순위 1위에 등극했다. 중국은 미국에 이어 2위를 차지했으나, 미국과는 상당한 격차를 보였다.
◆AI 규제 필요성 한목소리… 각국 협력 필요성
전문가들은 AI 투자뿐 아니라 규제 마련에도 힘써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미국 AI 정책 컨설팅 기업 ‘글래드스톤 AI’는 미국 국무부 의뢰로 작성해 최근 공개한 보고서에서 “가장 발전한 AI 시스템이 최악의 경우 인류 멸종 수준의 위협이 될 수 있다”며 “미국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고 단언했다. 이 보고서는 주요 AI 기업 최고경영자(CEO), 사이버 보안 연구원, 대량살상무기 전문가, 정부 내 국가 안보 관계자 등 200여명을 1년여에 걸쳐 인터뷰한 내용을 토대로 작성됐다.
미국은 국토안보부 주도로 지난달 26일 AI의 안전한 사용을 위한 연방 자문기구인 AI 안전보안이사회를 발족하고, 자문위원 22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명단에는 샘 올트먼(오픈AI), 사티아 나델라(MS), 순다르 피차이(구글), 젠슨 황(엔비디아) 등 IT 회사 CEO들과 스탠퍼드대 AI 연구소장, 메릴랜드 주지사, 시애틀 시장 및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포함됐다. 이 기구는 AI 열풍의 부작용을 막고 AI 시스템의 안전한 사용을 위해 설립된 자문기구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해 행정명령을 통해 설립을 지시한 바 있다.
각국은 AI 사용 원칙 등 규범 마련을 위해 경쟁국들과도 손잡는 모양새다. 미국과 중국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AI의 군사적 활용 등과 관련한 위험을 주제로 14일 첫 정부 당국자 간 양자 협의를 진행하고 AI의 위험 및 안전 관리 접근법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미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따르면 이날 미국은 개도국 및 선진국 모두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AI의 이점을 이용해야 한다고 전했다. 또 이를 위해 AI 시스템이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장하고 이에 대한 국제적인 컨센서스를 지속적으로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NSC는 “중국에 의한 AI의 오용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 2일 정상회담에서 AI를 다루는 국제기구 설립 문제를 논의하기도 했다. 프랑스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 제2회 AI 안전 정상회의를 파리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프랑스는 파리에 기반을 둔 ‘국제 AI 기구’를 구상 중이며, 일본은 ‘히로시마 AI 프로세스’를 주도적으로 이끌며 AI 국제 규범 만들기에 앞장서고 있다.
유럽의회는 3월 AI를 활용한 생체 정보 수집을 엄격히 제한하는 등을 골자로 한 세계 첫 ‘AI 규제법(AI Act)’을 통과시켰다. 로베르타 메솔라 유럽의회 의장은 “혁신을 가능하게 하는 동시에 인간의 기본권을 보호해 줄 선구적인 법안”이라고 법안 통과 의의를 밝혔다. 지난달 발간된 스탠퍼드대 인간중심 인공지능연구소(HAI) 연례보고서 ‘인공지능 인덱스 2024’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입법 절차에서 AI에 대한 언급은 2175건으로 전년 대비 두 배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