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수진의시네마포커스] 사회적 위선을 꼬집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차이콥스키의 이미지는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과 같은 명곡을 남긴 러시아의 위대한 작곡가 정도일 것이다. 2022년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고 최근 국내 개봉한 ‘차이콥스키의 아내’는 러시아의 거장이자 문제적 감독인 키릴 세레브렌니코프의 네 번째 칸 영화제 공식 초청작이다. 이 영화는 차이콥스키의 삶에서 지극히 사적이고 은밀한 부분, 그러나 사실상 그의 삶에서 가장 시끄러운 스캔들이었던 안토니나 밀류코바와의 만남과 결혼, 파국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러시아 당국은 ‘위대한 러시아의 작곡가’라는 차이콥스키 신화를 유지하기 위해 제정 러시아 사회의 윤리와 배치되거나 저급한 것들로 평가받던 모든 요소들로부터 이 천재적 예술가의 사생활을 철저하게 분리하고 통제해 왔다. 영화는 차이콥스키의 삶에서 괄호 쳐진 바로 이 부분을 파고들어 그의 온전한 삶을 복원하려 한다. 이를 위해 알렉산더 포즈난스키의 ‘차이콥스키: 내면에 대한 탐구’와 발레리 소콜로프의 ‘안토니나 차이콥스키: 잊혀진 삶’이라는 두 권의 책이 중요하게 활용된다.

영화는 철저하게 안토니나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우리는 그녀의 시점 안에서 그녀가 보는 것을 보고 그녀가 이해하는 대로 이해한다. 감독은 이 영화가 차이콥스키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 안토니나에 대한 영화라고 규정한다. 실제로 이 영화는 여성에게 지극히 억압적이었던 시대에 국가의 자부심과도 같았던 예술가에 집착해 파괴하려 한 악녀라는 비난을 받으며 고통스러운 삶을 산 안토니나의 자아를 깊이 있게 탐구한다. 차이콥스키를 자기 삶의 유일한 종교이자 태양으로 숭배했던 그녀의 삶에 대해 감독은 “바로 옆에 태양이 있다면 화상을 입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라고 반문한다.

어떤 면에서 이 영화는 위대한 예술가의 그늘 아래서 고통받다 파괴된 여성 이야기라는 매우 고전적인 서사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서사는 비단 ‘차이콥스키의 아내’뿐 아니라 로뎅과 카미유 클로델의 서사처럼 예술에서 오랫동안 선호되고 반복적으로 묘사되어 온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여기에 사회적 위선이라는 주제를 더 얹는다. 지극히 연극적이었던 시대. 사회가 요구하는 의상을 입고 사회가 기대하는 표정을 지으며 무대에서 자신의 삶을 연기하는 삶을 살았던 사람들. 영화는 나 자신으로 살 수 없었던 시대의 사회적 위선, 박탈된 개인의 자유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회적 압력과 주인공의 욕망 사이에서 그 간극이 극대화될 때 금지된 대상을 욕망하는 주체가 감당해야 했던 고통과 형벌에 관해서 말이다. 영화는 주인공의 주관성과 외부세계의 객관성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비극을 19세기 유럽 예술의 다양한 장르를 빌려 화려하고 아름답게 그려낸다. 이 영화는 제7의 종합예술로서 영화가 가질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처연하고 아름다운 비극을 빚어낸다.


맹수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