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로 2m 가로 1m80㎝ 가까운 거대한 캔버스에 종이를 뜯어 붙이고 물감을 흘렸다. 왼쪽 중간 부분엔 거리에서 주워온 어린이 그림을 배치했고, 아래쪽에 날개를 활짝 편 채 날고 있는 박제 독수리를 장식하고 그 밑에 버려진 베개를 끈으로 묶어서 매달았다. 마치 쓰레기장에서나 볼법한 물건 같다. 그런데 이것이 뉴욕 근대미술관에 소장품으로 버젓이 자리 잡고 있다.
로버트 라우션버그의 작품인데, 그는 무언가를 그리고 만들어내는 창작보다 일상 사물이나 쓰레기들을 끌어다 맞추고 구성해서 작품을 창작했다. 주변의 잡동사니나 일상 사물들을 결합해서 만들었다는 뜻에서 아상블라주로 불리기도 하고, 사물들 위에 회화적 구성요소인 색도 칠해서 합쳤다는 의미로 콤바인 페인팅으로 불리기도 한다.
무엇을 나타내려 한 걸까. 제목인 ‘협곡’을 참조해서 협곡 사이를 날아가는 독수리를 연상해 볼 수 있다. 쓰레기와 물감 얼룩들이 뒤섞인 모습에서 뒤죽박죽인 우리 현실의 협곡을 연상해 볼 수 있고, 그 현실의 벽을 뚫고 앞으로 헤쳐 나오는 독수리의 은유로 이해할 수 있다.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