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대통령은 왜 이민자들에게 인기가 없을까 [이슈+]

2023년 기준 미국인구통계국(US Census)의 조사로 미국 인구의 13.6%는 이민자다. 부모 세대나 조부모 세대가 이민한 인구까지 포함하면 이 비율은 훨씬 더 올라갈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이들로부터의 지지를 얻어야하고, 그래왔으며, 앞으로도 당연히 그럴 것으로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11월 대선이 6개월도 채 남지 않은 최근 나온 여론조사 결과는 이를 뒤엎는 결과를 보여준다. 13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가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시에나대와 공동으로 지난달 28일부터 지난 9일까지 애리조나와 조지아, 미시간, 네바다,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등 6개 경합주의 등록 유권자 409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위스콘신을 제외한 5개 주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앞섰을 뿐만 아니라 18∼29세 젊은 층과 히스패닉 유권자들에게서 바이든 대통령과 동률의 지지를 기록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흑인 유권자층에서도 20% 이상 지지를 획득했다. 이는 공화당 후보에 대한 역대 지지 가운데 최대 수준이라고 NYT는 평가했다. 바이든 대통령으로서는 참담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왜 그럴까.

지난 1월 뉴욕 중심가 맨해튼에서 “바이든, 제노사이드를 돕는 것을 멈춰라“ 시위에 참석하고 있는 이민자 시민들. 뉴욕=로이터연합뉴스

◆이민정책 실패, 가자 전쟁 악화

 

이민자들 역시 미국인이기 때문에 바이든 대통령이 낮은 인기를 얻고 있는 일반적인 요인, 경제 악화와 인플레이션 등에 영향을 받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민 문제 자체로 보자면 역시 약 1달간 대학가를 휩쓸었던 반전 시위의 직접 원인이 됐던 가자 전쟁과 관련된 정책 불신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 민주당 미시간 프라이머리에서 나타난 ‘지지후보 없음’(uncommitted) 운동이 이를 확인시킨 바 있다. 민주당 프라이머리에는 지지후보 없음을 한 선택지로 선택할 수 있게 돼 있는데, 지지후보 없음이 약 13%를 기록했다. 젊은 층의 이탈도 있지만, 미시간 지역의 무슬림 유권자들의 지지를 잃은 것도 한 원인으로 분석됐다. 경합주인 미시간에는 23만여명의 무슬림이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 최대 무슬림 단체 미국이슬람관계위원회(CAIR)가 2020년 대선 당시 실시한 출구 조사에선 무슬림 유권자의 약 69%가 바이든 대통령에게 투표했다. 가자 전쟁으로 무슬림 이민자 인구에게 지지를 잃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이 이번에도 이같은 압도적인 결과를 얻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경합주인 애리조나는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1만 5000표 차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이겼는데 이 곳의 무슬림 인구는 1만1000명이다.

 

이민 정책의 실패는 히스패닉 유권자들의 지지도 잃게 만들고 있다. 2021년 취임 직후에는 트럼프 행정부의 국경 강화 정책을 되돌리는 완화된 이민 정책을 폈지만 올해 초에는 국경 통제 강화 정책으로 돌아섰다. 새 이민정책에 따르면 국경에서 이민신청을 하는 이민자들에 대해 자격심사를 강화하고, 범죄 전과가 있는 이민자들이 신속 추방될 수 있다.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주로 범죄 전과가 있거나 궁극적으로 이민 허가를 받기 어려운 이들이지만, 심사 과정 자체의 강화가 상징하는 바가 크다는 것이 히스패닉계의 반응이다. 히스패닉계 대표자들은 이달 초 백악관을 방문해 미국에 수년째 살고 있는 이민자들에 대한 구제책을 요구하기도 했다.

 

2020년 대선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든든한 뒷배였던 흑인 유권자들도 대거 이탈하고 있다. 2020년 대선 당시 흑인 유권자 87%가 바이든 대통령을, 12%가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했지만 차이를 좁히고 있는 것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지난해 12월 분석기사에서 “다수 흑인들은 민주당이 약속을 어겼다고 생각한다”며 “저렴한 주택·의료비·학자금 대출 등 문제에 대한 진전이 부족하다는 인식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가자 전쟁에 대한 바이든 대통령의 태도 역시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억압받는 집단’이라는 공통된 정체성으로 “흑인과 팔레스타인 사이 강한 연대감”이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흑인 정치의 구심점인 흑인 교회가 바이든 대통령의 이스라엘 정책을 공개 비판하고 있다.

지난 15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 두번째)이 백악관 국무회의실(캐비넷룸)에서 전투사령관회의를 주재하며 두명의 흑인 참모들 사이에 앉아 있다. 바이든 대통령 왼쪽은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 오른쪽은 찰스 퀸턴 브라운 주니어 합참의장이다. 워싱턴=AP연합뉴스

◆바이든, 이민자 지지 회복할 수 있을까

 

바이든 대통령은 이같은 추세를 의식한 듯 최근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인종차별주의자적인 면모를 부각하고 자신이 다양성주의자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14일 워싱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계의회연구소(APAICS)의 연례 갈라 행사장에선 “수십 년 만에 초당적 지지를 받는 포괄적 이민개혁 법안을 내가 마련했는데, 그 자, 그 루저(loser·패배자)가….”라고 말해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하원 공화당 의원들에게 자신의 이민개혁안에 동의하지 말라고 압박하는 바람에 법안이 좌초됐다는 취지다. 또 “내 전임자는 우리가 복수와 응징의 나라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우리가 모든 사람을 위한 희망과 기회의 나라이자 정직과 품위, 신뢰, 공정의 나라라고 믿는다”며 “다양성이 우리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해 말 선거 유세에서 이민자들에 의한 ‘혈통 오염‘을 주장한 사실을 거론한 것이다.

 

13일 아시아·하와이 원주민·태평양 제도 주민(AANHPI) 유산의 달을 맞아 개최된 백악관 행사에서는 “우리가 포괄적인 이민 시스템 개혁을 위해 싸우는 동안 그는 이민자(트럼프 전 대통령)를 강간범과 살인자로 부르고 있다“며 “ 전임자는 우리 중 일부만을 위한 나라를 원한다. 우리는 우리 모두를 위한 미국을 원한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축사 도중 조지 W 부시 대통령 당시인 2005년 백악관 주방장으로 승진한 필리핀계 미국인 크리스테타 커머퍼드를 직접 연단으로 불러 공개적으로 칭찬했고, 중국계 미국인 배우 루시 리우가 이날 행사에 참석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이민자들의 지지는 전체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세 회복과 함께 이민정책과 가자전쟁의 향방에 달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이스라엘이 라파에서 지상전을 감행해 대규모 민간인 피해가 발생하고, 이것이 다시 미국 국내 여론을 자극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를 의식한 듯 최근 바이든 행정부는 이스라엘에 지상전 감행시 무기 지원을 끊겠다는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