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이나 스크린에 눈을 고정하게 만드는 영화 장면들이 있다. 이런 작품은 손가락 하나 움직일 겨를을 주지 않고, 긴 시퀀스가 끝난 뒤에야 밀린 숨을 몰아쉬게 한다. 내년이면 팔순인 조지 밀러 감독의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가 그렇다. 밀러 감독은 전작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2015)처럼 이번에도 8기통 엔진을 달고 관객을 멸망한 세상의 아름다운 광기 속으로 데려간다.
‘퓨리오사’는 ‘매드맥스’의 프리퀄(시간상 앞선 이야기를 다룬 속편)이다. ‘매드맥스’에서 퓨리오사는 폭군 임모탄이 지배하는 시타델의 간부이지만, 모든 걸 버리고 고향으로 향했다. 자잘한 사연 설명 없이, 모래바람 속을 묵묵히 일직선으로 질주했다. 이번에는 퓨리오사가 탈주에 이르기까지 15년 이상의 시간을 다룬다. 이야기의 엔진을 데우는 동력은 생존과 복수다.
‘퓨리오사’는 문명 붕괴 후 살아남은 인간들이 끝 모를 황무지에 쓴 광란의 시에 가깝다. 밀러 감독은 영화 시작 후 느긋하게 시동을 걸 시간을 주지 않는다. 퓨리오사의 고향인 녹색의 땅이 나오는 것도 잠시, 이내 끝없는 사막이 펼쳐진다. 심장 박동 같은 음악이 낮게 깔리고, 어린 퓨리오사를 납치한 일당과 딸을 찾으려는 어머니가 바이크를 탄 채 광막한 황야를 말없이 달린다.
퓨리오사를 연기한 안야 테일러 조이는 고독마저 사치인 절박한 인간을 표현해낸다. 전편의 샬리즈 세런과 비교하면 여전사로서 듬직함은 덜하지만 연약함 속에 ‘깡’이 엿보인다. 크리스 헴스워스는 디멘투스를 사악하면서도 비뚤어진 유머 감각을 가진 악당으로 그려 마냥 미워할 수 없게 만든다. 다만 퓨리오사와 대척점에 선 인물로서 극을 끌고 가기에는 흡인력이 조금 아쉽다.
이 영화는 흙먼지와 모래바람, 엔진의 굉음과 함께 한참 미친 듯이 질주한 끝에 시동을 끄고 고요히 복수의 의미를 묻는다. 막막한 청색 하늘을 등지고 진행되는 마지막 복수 장면은 서부영화의 한 장면처럼 고전적이다.
다만 메시지의 힘은 전작보다 약하게 느껴진다. ‘매드맥스’는 위대한 단순함 속에 기계와 자연, 여성성과 남성성을 대비시키며 직관적으로 주제의식이 전달되도록 했다. 반면 ‘퓨리오사’는 대사량이 많아지면서 서사가 늘어났음에도, 복수 후의 개운함이나 씁쓸한 뒷맛, 허망함 같은 뚜렷한 감정을 전하진 못한다. 인간의 존엄성이 의미 없어진 적자생존의 지옥에선 복수할 대상조차 모호해서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