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교통사고를 낸 뒤 달아났다가 뒤늦게 음주운전 사실을 시인한 가수 김호중(33)씨가 사고 12일 만인 21일 서울 강남경찰서에 출석했다. 전날 김씨 측은 자진해 조사를 받고자 했으나 경찰 사정으로 일정이 늦어졌다고 했다가 경찰이 이를 반박하는 등 입장 차이를 보였었다.
이날 오후 2시쯤 강남경찰서에 출석해 조사받기로 일정 조율을 마쳤다는 김씨는 경찰서에 비공개 출석해 조사를 받고 있다. 경찰은 김씨가 마신 술의 양이 얼마나 되고 집에 갔다가 다시 나온 경위, 이번 사건을 은폐하는데 김씨가 관여한 정도 등을 조사할 예정이다.
전날까지만 해도 김씨는 경찰에 자진 출석해 조사를 받으려 했지만 경찰 사정으로 연기됐다고 주장했다. 완강하게 음주운전 혐의를 부인하다가 지난 19일 밤 시인한 김씨는 전날 변호인을 통해 “수일 내로 경찰에 자진 출석해 음주운전을 포함해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팬들과 국민에게 사과하고 싶다”는 심경을 전했다. 또 “이번 사건을 통해 죄가 죄를 부르고 거짓말이 더 큰 거짓말을 낳는다는 사실도 깨닫게 됐다”고도 했다.
김씨 변호인인 조남관 변호사는 “변호인 선임 이후 창원공연 전날인 지난 17일 김씨가 소속사를 통해 심경 변화를 알리는 입장을 전해왔다”며 “이후 경찰과 일정을 조율해 오늘(전날) 오후 김호중이 자진출석해 조사받고 국민들에게 입장을 표명할 예정이었으나 경찰 측 사정으로 조사가 연기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신속히 김호중과 소속사의 입장을 알리는 것이 도리라고 판단해 어젯밤 늦게 입장문을 알리게 됐다”고 덧붙였다. 김씨의 입장 변화 후 20일 경찰 조사를 서둘러 받으려 했으나 경찰과 일정 조율 과정에서 조사가 늦어지면서 음주운전 혐의를 시인하는 입장문부터 19일 밤에 먼저 냈다는 것이다.
이에 경찰은 애초에 김씨 측과 출석 일정을 조율하고 확정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경찰 관계자는 전날 “출석 여부와 일정은 수사 일정에 따라 유동적”이라고 말했다.
음주운전 혐의를 계속해서 부인하던 김씨 측이 갑작스럽게 입장을 선회한 배경으로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감정 결과와 폐쇄회로(CC)TV 영상 등 여러 간접증거가 나오는 상황에서 구속을 피하고자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웅혁 건국대 교수(경찰학)는 전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혈중 알코올 농도 측정 수치가 없어도 위험 음주 치상이라고 하는 죄는 음주 영향으로 정상적인 운전을 못할 수 있었다고 볼 증거가 입증되면 1년 이상, 15년 이하 중형에 처할 수 있다”며 “매니저가 증거 인멸도 했고, 이건 구속수사를 앞당기는 길이라고 자체 판단을 한 것 아닐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음주운전 측정 수치가 없어도 구속될 가능성이 크지만 최대한 금전적인 이익은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미시적 전략도 작동됐다”며 “콘서트를 이틀까지 강행한 것을 봐서는 매출액 40억원을 손해를 안 보려고 하는, 시점 자체가 그 전에 자수를 해도 충분한데 이런 종합적인 판단으로 자수가 (지난 19일) 이뤄졌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지난 18∼19일 김씨는 경남 창원스포츠파크 실내체육관에서 ‘트바로티 클래식 아레나투어’ 콘서트를 열었다. 음주운전을 했다는 입장표명은 콘서트를 예정대로 개최한 뒤에 나왔다. 콘서트는 5891석 규모 공연장이 이틀 연속 전석 매진됐다. 티켓이 VIP석(23만원)과 R석(21만원)으로 나뉘었는데 이 콘서트 티켓 수익만으로 약 23억원을 벌어들인 것으로 추산된다. 오는 23∼24일에는 서울 송파구 올림픽체조경기장 특설무대에서 ‘월드 유니온 오케스트라 슈퍼 클래식: 김호중&프리마돈나’ 공연도 예정돼 있는데 이 공연도 이틀 연속 2만석이 매진되면서 티켓 수익이 4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 교수는 향후 수사에서 첫 번째 쟁점으로 김씨가 ‘누구와 얼마만큼의 음주를 했느지’를 꼽았다. 이에 따라 음주운전의 처벌 정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경찰도 김씨의 사고 당시 혈중 알코올 농도는 알 수 없어진 만큼 CCTV와 차량 블랙박스 등을 통해 종합적으로 사고 당일 음주량이 얼마나 됐는지 파악하고 있다. 경찰은 전날 김씨 소속사 생각엔터테인먼트 사무실을 추가 압수수색했다. 아직 김씨가 사고 전후로 이용한 차량 3대의 블랙박스 메모리카드를 하나도 확보하지 못해 사라진 경위를 파악하고 회수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여기에는 김씨 음주 정황과 사고 전후 김씨와 소속사 관계자들의 상황이 담겼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다만 이 교수는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 외의 범죄라 생각된다”고 말했다. 김씨 측은 블랙박스 메모리카드를 훼손하고 사고 당일 처음에 매니저가 경찰에 대리 출석해 허위로 자수하며 증거인멸과 공무집행을 방해한 혐의 등 도 함께 받고 있다. 이 때문에 김씨 외에도 생각엔터테인먼트 이광득 대표와 소속사 본부장, 매니저 3명도 함께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
이 교수는 “김씨도 공모했다고 한다면 형량이 훨씬 가중될 수 있다”며 “핵심은 현재 공무집행방해를 조직적 차원에서 김씨도 함께 한 것이 분명한 것인지에 수사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