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생 2명 등 총 5명이 대학 동문 12명을 포함해 최소 61명을 대상으로 디지털 성범죄를 저지르는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줬다. 이들은 2021년 7월부터 올해 4월까지 텔레그램 채널과 대화방을 통해 여성들의 졸업사진, SNS 사진 등을 토대로 불법 합성물 4000여 개를 제작해 변태적 취향을 가진 사람들과 공유·유포하는 식으로 범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2019년 미성년자 등 일반 여성을 상대로 한 성착취 영상을 텔레그램을 통해 공유·판매한 ‘n번방 사건’을 겪고도 유사한 범죄가 재발하는 현실이 참담하다.
이번 사건의 주범격인 30대 박모씨는 서울대를 10년 이상 다니면서 알게 된 여자 후배들을 대상으로 범행했다니 어이가 없다. 그는 자신이 합성한 음란물과 함께 피해자의 이름 등 신상을 텔레그램 채널에 유포했고, 채널 이용자들은 피해자들을 ‘먹잇감’으로 표현하는 등 성적 조롱을 했다고 한다. 박씨는 심지어 이 같은 대화를 캡처해 피해 여성에게 전송한 뒤 답변을 요구하는 협박까지 했다니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피해자들이 받은 충격이 어느 정도일지 가늠하기 어렵다. 이러니 여성들이 “우리 사회의 성인지 감수성이 너무 낮아 불안하다”고 호소하는 것 아닌가.
늑장 대응·부실 수사 등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당초 경찰은 네 차례 수사에 나섰으나 익명성이 높은 텔레그램 메신저 특성상 피의자를 특정하지 못하고 수사중지·불송치로 종결했다. 그러다가 지난해 12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의 지시로 서울청 사이버수사과에서 재수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피해자들이 처음 고발했을 때 신속·철저하게 수사했더라면 피해 확산을 막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경찰은 성착취물 범죄 온상인 텔레그램에 대한 수사 한계를 하루빨리 극복할 책임이 있다. 그래야 음습한 온라인 공간에서 독버섯처럼 번져가는 디지털 성범죄를 막을 수 있지 않겠나.
정부는 n번방 등 유사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디지털 성범죄 대응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때뿐이었고, 여성 불안을 해소시킬 수 있는 가시적·실효적 대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필요하다면 ‘함정 수사’ 등 수사기법을 고도화하는 조치라도 내놔야 한다. 국회와 법원도 성착취물 제작·유포는 물론 소지·시청 행위까지 보다 엄단해야 한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디지털 성범죄가 끊이지 않는 원인을 정부가 심층 파악해 교육 등 근본 대책을 마련하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