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요 흥얼대는 할머니들 보며 ‘칠곡 래퍼’ 제안했죠” [차 한잔 나누며]

‘전통 홍보맨’ 박종석 郡 공보팀장

“랩, 젊은 층의 전유물 아님 증명
즐겁게 노년 보내시는 모습 기뻐”

‘일당백’·‘워커홀릭’ 등 별칭 붙어
추모 위한 ‘천안함 챌린지’도 제시
스토리텔링, 가장 중요하게 생각

‘일당백’, ‘워커홀릭’…. 박종석(49) 경북 칠곡군 공보팀장을 부르는 별칭들이다. 칠곡군 인구는 10만9234명. 경북 전체 인구(254만8440명)의 4.2%에 불과한 작은 도시지만 시선을 사로잡는 흥미로운 홍보 자료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진다. 박 팀장의 아이디어가 빛을 발한 결과물이다. 충북에 톡톡 튀는 아이디어 영상으로 유명 인사가 된 ‘충주맨’ 김선태 주무관이 있다면, 경북엔 ‘전통 홍보맨’ 박 팀장이 있다.

 

21일 칠곡군청에서 만난 박 팀장은 “반갑습니다”라며 명함 한 장을 건넸다. 그의 명함엔 ‘우물 밖 홍보, 24시간 열려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박 팀장은 그야말로 ‘아이디어 뱅크’다. NHK 월드와 아리랑 국제방송, 로이터, AP통신, 중국중앙(CC)TV 등 세계 주요 외신에 소개된 할매 래퍼 그룹 ‘수니와 칠공주’는 박 팀장의 제안에서 시작했다. 그는 “성인문해교실에서 한글을 배운 할머니들이 민요를 흥얼거리는 모습을 보고 번뜩 랩이 떠올라 ‘래퍼가 돼 보자’고 제안했다”며 “무엇보다 할머니들이 랩은 젊은 층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을 증명하고 요즘 즐겁게 노년을 보내시는 것 같아 내 일처럼 기쁘다”고 말했다.

박종석 경북 칠곡군 공보팀장이 21일 칠곡군청에서 진행한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스토리텔링이 있는 주제 발굴이 중요하다”는 홍보 지론을 밝히고 있다. 칠곡군 제공

해병대 장교로 근무하다 2015년 공직에 들어선 박 팀장은 전직 군인이었던 만큼 6·25전쟁 최후의 보루이자 ‘호국도시’인 칠곡군을 알릴 아이디어가 샘솟는다고 했다. ‘천안함 챌린지’도 그의 아이디어다. 박 팀장은 “2010년 천안함 폭침으로 희생된 장병 46명과 구조 과정에서 순직한 고(故) 한주호 준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고자 ‘46+1’을 종이에 쓰고 2010년 천안함 희생 장병과 대한민국의 모든 호국영령을 추모하는 챌린지를 제안했는데, 당시 수천명이 참여해 보람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박 팀장이 홍보 업무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 건 스토리텔링이다. 코로나19로 마스크가 생활필수품이었을 땐 6·25전쟁 이후 칠곡군과 우정을 이어 가고 있는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에게 마스크를 보내자는 의견을 냈다.

 

6·25전쟁에서 실종된 엘리엇 미국 육군 중위의 사연을 발굴한 사람 역시 박 팀장이다. 그는 “평생 아버지를 기다리다 눈을 감은 어머니와 실종된 아버지의 사후 재회를 위해 엘리엇 중위 자녀를 2015년 군으로 초청했다”며 “자녀들이 어머니 유해 일부를 작은 유리병에 담아 칠곡 호국의다리 아래에 뿌렸을 땐 마음이 찡했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제주도에서 진행한 ‘전이수 작가·칠곡할매글꼴 특별기획전’도 박 팀장의 번뜩이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다. 전 작가의 작품 40여점에 녹아 있는 의미를 칠곡할매글꼴로 설명한 기획전은 따뜻한 울림을 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 팀장은 “기획전 구상은 물론 할머니들이 쓴 글꼴 액자를 비행기에 싣지 못해 완도에서 배를 타고 직접 제주도까지 운전해서 운반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박 팀장은 매일 오전 7시에 출근해 오후 11시쯤 퇴근한다. 동료들로부터 “도대체 잠은 언제 자느냐”란 말까지 들을 정도로 일과 생활의 구분이 없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안 돼도 두드려라’다. 박 팀장은 휴대전화 통화 목록을 보여 주면서 “어제만 해도 업무와 관련된 기관 관계자들과 200통 넘게 통화를 했다”며 “휴대전화를 24시간 내내 충전하는 건 일상이 됐다”고 웃어 보였다.

 

매일 오전 6시쯤 출입기자들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로 보도자료를 돌려 ‘기자 스토커’라는 웃지 못할 별명까지 붙은 박 팀장은 “‘공무원을 위한, 공무원에 의한’ 홍보가 아닌 ‘주민을 위한, 주민에 의한’ 홍보를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 말을 할 때 그의 두 눈이 유독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