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번주 대입전형위원회를 열고 다음주에는 대학별 대입전형시행계획과 모집요강을 확정해 발표할 예정인 가운데, 의대 증원을 둘러싼 의·정 갈등은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전공의와 의대 교수들에게 병원 복귀와 집단휴진 자제를 요청하며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하지만, 의료계는 의대 증원 취소 소송 및 집행정지 사건에 몰두하며 사법부 공격까지 서슴지않고 있다.
◆“法은 누구나 평등, 전공의 ‘법 위반’ 3개월”
한덕수 국무총리는 22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서 집단이탈 3개월을 넘긴 전공의들을 향해 “국민들이 더 실망하기 전에, 환자들의 고통이 더 커지기 전에, 여러분의 자리로 돌아와 주시기 바란다”며 “언제까지 이런 상황이 지속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것은 그 누구보다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실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법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하며, 누구도 예외없이 지켜야 할 사회적 약속”이라며 “여러분의 집단행동은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는 제네바 선언에 어긋날뿐 아니라, 의료법 등 현행법을 위반하고 있다. 그것이 3개월을 넘어섰다”고 지적했다. 한 총리는 “전공의는 국민과 환자를 위해 다수가 기피하는 필수의료를 선택한 우리 의료계의 소중한 자산”이라며 “정부의 의료개혁은 여러분을 위한 것이며, 여러분과 함께 추진할 것임을 다시 한번 약속한다”고 덧붙였다.
한 총리는 일부 대학병원 교수들이 23일 총회를 열고 1주간 집단휴진 등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면서 “국민들이 결코 원하는 일이 아니다”며 지금까지 3차례 집단휴진을 강행했으나 참여율이 미미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환자 곁을 굳건히 지켜줄 것으로 믿는다고 강조했다.
◆복지부, ‘의료 개혁’을 첫번째 성과로 제시
정부는 전공의 이탈에 이미 3차에 걸쳐 파견중인 427명의 공보의·군의관에 이어 군의관 120명을 추가 파견하기로 했다. 전공의 이탈로 응급실 접수 후 전문의 최초 진료까지 소요시간은 평시 24.7분에서 19.5분으로 줄었고, 응급실 평균 재실시간도 평시 238.9분에서 188.3분으로 크게 감소했다고 덧붙였다.
보건복지부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의료 개혁을 첫번째 성과로 제시했다.
“수가 합리화와 법규 개선, 시범사업 등을 단기과제로 신속 추진하겠다”면서도 “주요 개혁과제는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중심으로 집중 논의해 실천 로드맵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전공의 근무시간 단축’ 등도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전공의 집단이탈 장기화에 따른 대책 등은 언급하지 않았다. 향후 계획으로 “의료체계 정상화를 위한 투자방향 등 논의를 병행하겠다”고 했지만, 3개월이 넘어간 전공의 집단이탈 사태에 대한 언급조차 없다. 전공의단체와 대한의사협회는 의료개혁특위 참여를 거부하고 있다.
복지부는 여·야 합의 불발로 22대 국회로 넘어갈 전망인 연금개혁안과 관련해 ‘상생의 연금개혁 추진’으로 제시하고 네번째 성과로 꼽았다. 5차 재정추계 및 종합운영계획, 해외사례 등 총 25종 5621쪽 분량의 자료를 국회에 제출해 공개함으로써 연금개혁의 초석을 마련했다고 자평했다.
◆의료계 “대법, 29일까지 결론내려야”, 항고심 판사 공격도
의료계는 최근 기각·각하된 의대 증원 취소 소송 관련 집행정지 사건에 매몰돼 있다.
이 소송을 대리하는 이병철 변호사는 이날 ‘신속한 결정 요청서’를 내고 “대법원이 29일까지 최종 결정하겠다고 발표해달라”고 주장했다. 정부 모집요강 발표 전에 대법원이 판단해달라는 것인데, 아직 재판부 배당조차 되지 않아 1주일만에 판단을 받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관측이다.
의료계는 다른 가처분 신청의 항고심을 맡은 이균용 부장판사를 공격하고 있다. 이 부장판사가 2016년 원심을 깨고 한의사의 뇌파계 사용을 합헌 판결했고, 지난해 대법원장 후보자에서 낙마한 후 최근 대법관 후보에 올라 공정성이 의심된다면서 일부 사건 재배당을 주장하고 있다.
◆대법 “오늘 심리 개시해도 6월말 결론날까말까”
의료계 기대와 달리 대법원이 이달 중 결론을 내릴 가능성은 희박하다. 대법원은 21일 항고심 법원으로부터 자료를 넘겨 받아 사건을 접수했다. 다만 이를 두고 ‘본격적인 심리’에 착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소송 기록을 받은 대법원은 재항고인(의료계)과 피재항고인(정부 측)에 소송기록 접수통지를 보낸다. 재항고인은 통지를 받은 날로부터 20일 이내에 대법원에 재항고이유서를 제출해야 한다. 그 이후에야 재판부 및 주심 대법관 배당이 이뤄져 심리에 돌입하게 된다.
의료계 측이 재항고이유서를 곧장 제출하더라도 곧장 후속 절차가 진행된다고 볼 수도 없다. 의료계 재항고 이유에 대한 정부 측 입장도 들어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한 부장판사는 “항고인이 아무리 빨리 이유서를 냈다고 해도 상대편에도 답변할 기회와 시간을 줘야 한다”면서 “사정이 급한 당사자가 의견을 낼 권리를 포기할 순 있어도 상대의 권리를 빼앗을 수는 없다”고 했다.
대법원 관계자도 “(대법관이) 사건 검토에 들어가는 시간이나 재판부 합의에 소요되는 시간은 가늠할 수 없다”며 “긴급성을 요하는 사건으로 보고 오늘(22일) 당장 심리에 착수한다고 가정하더라도 6월 말까지 결론이 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