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정책을 사전 조율하는 고위당정정책협의회가 매주 정례화된 것은 이번 ‘해외 직구 규제’ 발표에서 비롯된 논란이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기존에도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대통령 비서실장과 여당 지도부가 참여하는 고위당정회의가 열려 왔다. 하지만 설익은 정책 발표에 따른 혼란이 반복되면서 대통령실이 주관하는 정책 라인 중심 별도 협의체가 마련된 것이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22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진행한 브리핑에서 “고위당정협의회에서는 당정 간 정책뿐 아니라 국정 전반에 대한 큰 틀의 논의가 이뤄진다면 고위당정정책협의회는 정책적인 측면에서 한층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지는 당정 간 협의체”라고 차이점을 설명했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당정회의는 여러 형태로 있을 것”이라며 “이번 주에도 장관들이 좀 더 원활히 적극적으로 (소통)해야겠다는 차원에서 저희한테 여러 현안 인사차 어떻게 긴밀히 할지에 대해 방문한다는 분들이 계신다”고 설명했다.
개각 인사가 늦어지면서 정책 추진 동력도 약해졌다. 지난 9일 윤석열 대통령이 개각에 대해 “조급하게 할 생각 없다”고 말한 후 눈치보기는 더욱 심해졌다. 경제부처 한 공무원은 “언제 어떤 장관이 바뀔지 모르니 실무에서는 새로운 정책이나 아이디어 등을 내놓기 어렵다”며 “게다가 여소야대 국면이어서 정책과 법안들이 국회에서 막힐 것이란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공무원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한 정부 관계자는 “각 부처가 자신들이 갖고 있는 권한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경향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변화가 부담스러운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4·10 총선 바로 다음 주인 16일 국무회의에 참석한 이후 5주 연속 국무회의에 불참한 것도 이런 느슨한 분위기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여당 총선 패배로 공직 기강이 느슨해지기 쉬운 시기에 대통령이 공직 기강을 다잡는 자리이기도 한 국무회의에 장기간 참석하지 않은 것이 장악력 저하로 이어졌고, 이로 인해 정책 혼선이 빚어졌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설익은 정책’ 논란은 여당의 리더십 공백 상태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국민의힘 중진 윤상현 의원은 이날 KBS 라디오에서 “당정협의를 통해 현장에서 느끼는 것을 한번 미리 짚어보고 정책을 결정하는 게 좋은데 절차를 생략한 것이다. 그래서 당정협의가 더욱더 필요하다”면서 “지도부 공백 상태도 있고 추 원내대표가 자리를 잡았지만, 아직 정착이 안 된 상태이고 하니 (당정협의가) 제도화가 안 돼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직적 당정관계 개선이라는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비슷한 정책 혼선이 반복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3월 ‘김기현 체제’ 출범 당시에도 정책 혼선을 최소화하겠다며 △정책조정위원회 활성화 △정부 주요 정책 발표 전 사실상 당정협의 의무화 △비공개 실무 당정협의회 수시 개최 등에 나선 바 있다. 하지만 이후에도 수능 킬러 문항 폐지, 연구개발(R&D) 예산 축소,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등에서 당과 사전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은 점이 실책으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추 원내대표가 최근 “당정협의 없이 설익은 정책이 발표돼 국민 우려와 혼선이 커질 경우, 당도 주저 없이 정부에 대해 강한 비판의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강하게 경고한 것 역시 이런 점을 의식한 것으로 관측된다.
야당은 이날도 윤석열정부 정책 혼란에 대해 비판을 쏟아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바둑 용어인 ‘덜컥수’(깊이 생각하지 않고 결정을 내린 수)에 빗대 “윤석열정권의 정책 집행을 보면 ‘덜컥 정책’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다”며 “정권이 국민의 문제, 국가의 문제에 해결을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문제를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해외 직구 금지, 만 5세 입학, 주 69시간 근로, R&D(연구개발) 예산 삭감 등을 그 예로 들었다. 이 대표는 “국민 삶의 최종 책임자인 대통령의 남 탓, 발뺌도 심각한 문제”라며 “‘대통령 보고가 안 됐다’며 담당 부처를 질책했다는 식으로 넘어갈 수 없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