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노인의 67%가 가족에 의존한다는 통계를 봤습니다. 딸, 며느리들이 노인을 돌본다고요. 이런 상황에서 여성은 결혼으로 더 많은 책임을 안고 싶지 않겠죠.”
조앤 윌리엄스 미국 캘리포니아대 법대 명예교수는 한국의 초저출생 배경으로 근로 문화뿐 아니라 돌봄과 교육이 모두 엮어있다고 봤다. 윌리엄스 교수는 여성과 노동 분야로 11권의 저서와 100편 이상의 학술 논물을 발간한 세계적 석학이다. 지난해 EBS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와 한국 완전히 망했네요(Wow, Korea is so screwed)“라 말하며 머리를 부여잡아 국내에서도 유명해졌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24일 일·가정 양립과 유연 근무정책을 연구해온 윌리엄스 교수와 세미나를 열고 해법을 모색하는 자리를 가졌다.
◆“비혼·비출산, 물질적 행복의 조건 됐다”
윌리엄스 교수는 2021년 미국 여론조사기관인 퓨 리서치센터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7개국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인용하며 한국인이 의미 있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짚었다. 해당 조사에서 17개국 중 14개국이 삶의 의미 1순위로 ‘가족’을 꼽았다. 14개국에 들지 않은 한국은 1순위로 ‘물질적 풍요’를 꼽았다. ‘가족 ‘은 ‘건강’에 밀려 3위를 기록했다.
윌리엄스 교수는 “이는 나머지 국가와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라며 “한국은 OECD 국가 중 육아나 자녀 돌봄 지원 규모에서 상위권이지만 그에 대한 결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윌리엄스 교수는 첫째로 한국의 노동 문화를 지적했다. 그는 “한국의 노동 시간은 전설적”이라며 “더 설명할 필요도 없이 유명한 이야기”라고 했다. OECD 기준 2022년 기준 임금 근로자들의 근로시간은 회원국 평균 연 1719시간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임금 근로자 평균은 1874시간으로 평균보다 155시간, 한 달 기준으로는 13시간 더 많다.
그는 교육과 돌봄 정책도 초저출생의 주요한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의 사교육이 과열된 점을 근거로 “좋은 과외 선생님을 구하고, 학원에 태워다주고, 이런 일을 모두 다 엄마들이 하고 있고 홀벌이로는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의 말처럼 지난해 한국경제인협회는 보고서에서 합계 출산율 하락의 26.0%가 ‘사교육비 증가’ 때문이라고 했다. 사교육비가 1만원 오르면 출산율이 0.012명 감소한다는 분석이다.
돌봄 정책도 마찬가지다. 윌리엄스 교수는 한국의 노인 돌봄이 가족에 기대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여성은 더 많은 책임을 안는 것을 피하기 위해 결혼을 배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OECD에 따르면 한국 남성의 가사 참여도는 일본과 튀르키예 다음으로 낮게 나타났다. 여성 대비 남성의 육아·가사노동시간 비율은 23%에 불과하다.
◆“결혼, 가장 쉽게 제거할 수 있는 리스크”
윌리엄스 교수는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인이 1순위로 꼽은 ‘물질적 풍요’에 이르는 길은 ‘비혼’, ‘비출산’이라고 했다.
그의 진단에 국내 전문가들도 공감을 표했다. 김원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성별영향평가센터장은 결혼과 출산이 여성이 큰 리스크라고 분석했다. 그는 “여성들이 ‘경력에 대한 투자’와 ‘자녀에 대한 투자’를 힘들게 병행할 동인을 못 찾고 있는 것 같다”며 “부모로서의 삶에 대한 가치가 낮다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출산율이 근본적으로 반등할 수 있을지에 관해 회의감이 든다”고 했다.
김 센터장은 2000년대 중반부터 저출생이 국정 과제로 부상하고, 일·가정 양립 정책이 화두가 됐지만 들인 노력에 비해 실효성은 여전히 낮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육아휴직 정책의 경우 기업의 노동 관행은 그대로인데 유자녀 여성들을 대상으로 “잠깐 육아를 한 뒤 돌아오게 하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센터장은 “기업들이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초장시간 노동’은 여전해 노동 체제의 근본적 전환은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김 센터장은 정부가 최근 ‘저출생대응기획부’(가칭)를 설립하겠다고 한 점도 언급하며 “정부가 특단의 조치를 고민하며 인구 위기를 준비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20년간 시행된 정책들이 왜 실패했는지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