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엊그제 대입전형위원회를 열고 내년도 대학 입시에서 의대 모집 정원을 전년도보다 1509명 늘어난 4567명으로 확정했다. 각 대학이 오는 31일까지 수시 모집 요강을 공고하면 의대 증원 절차는 마무리된다. 서울고법이 전공의와 의대 교수 등이 제기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각하·기각한 것과 맞물려 27년 만의 의대 증원은 이제 되돌릴 수 없게 됐다. 일부 국립대가 의대 증원을 반영한 학칙 개정을 끝내지 못했으나 내년도 대입 선발 절차에는 차질이 없다는 게 교육부의 입장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어제 “교육부는 증원이 이뤄진 대학과 적극적으로 협력해 대입 시행 준비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의대 교수 단체는 대법원에 “증원 시행 계획과 입시 요강 발표를 보류하도록 소송지휘권을 발동해달라”고 요구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증원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전공의를 처벌하면 총파업에 나서겠다고 겁박하고 있다. 의료계가 언제까지 민의를 외면하고 ‘그들만의 리그’에서 따로 놀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자신들이 똘똘 뭉치면 정부를 굴복시킬 수 있다는 망상에서 벗어날 때가 되지 않았나. 더 이상의 집단행동은 무의미하고 피해만 키울 뿐이다. 전공의와 교수들은 환자 곁으로, 의대생들은 교실로 복귀해야 한다.
의대 증원 확정으로 의료개혁의 첫걸음을 내디딘 만큼 다음 단계로 이행해야 할 때다. 정부는 대형병원 병폐인 전공의 의존율을 대폭 낮추는 근본적인 의료개혁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전공의들이 파업하면 의료시스템이 마비되는 사태를 국민은 더는 보고 싶지 않다. 대형병원들은 하루빨리 전문의 중심으로 바꾸고 이번 사태가 끝나더라도 중증·응급 환자 중심으로 운영해야 한다. 의대 교육도 간단치 않은 과제다. 의대 교수들은 “교수·시설이 부족해 증원된 의대생에 대한 교육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부실 교육이란 비판을 듣지 않으려면 교수 증원, 강의·실습실 확충, 실습 기자재 확보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의대 증원에 뒤따르는 의료·교육시스템의 문제를 최소화하고 무너진 필수 의료를 정상화하려면 의·정 대화가 필수적이다. 종합병원 과잉 의존, 불합리한 의료 수가, 전공의의 열악한 수련 처우, 애매한 PA(진료지원) 간호사 제도 등 개혁 과제가 수두룩하다. 의사들은 소모적인 반발을 그만 접고 대화 테이블에 나와 의료개혁에 동참해야 한다. 그것이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