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중 3국 정상회의는 한국과 중국 관계의 변화 가능성을 사뭇 기대하게 하는 분위기 속에 27일 막을 내렸다. 이런 기대감은 전략대화 채널의 신설과 재개에 양국이 합의한 사실에 근거한다. 2016년 중국이 사드 보복 조치를 취한 이후 대부분의 전략대화가 중단되었다. 최근에서야 경제 장관급 회담(2022, 2024)이 열렸다. 통상 분야에서 장관 회담을 화상(2022)과 약식(2023) 형식으로 가진 바 있다. 외교·국방전략대화(2+2)는 2015년 이후 없었다. 2단계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은 이미 8년 전에 중단됐다. 이번 한·중 정상 간의 약식회담에서 합의한 대화채널의 신설과 재개가 가장 큰 성과로 평가받는 이유다.
주지하듯, 사드 사태 이후 한·중관계는 악화일로였다. 우리의 사드 배치 결정에 불만을 가진 중국이 우리와의 관계를 고압적이고 위압적인 언사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타협은 고사하고 해결을 위한 대화마저 거부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양국 정상이나 외교장관 간에 대화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 측은 그때마다 사드 해결(철수)을 대화 진전의 선제조건으로 내세우며 오히려 대화의 진정성을 보이지 않았다. 2019-2021년 3년 연속 중국 외교장관이 방한했지만 그가 제시한 협력 사항은 모두 후속 논의 없이 수포로 돌아갔다.
중국은 이렇게 한·중관계를 고압적이고 위압적인 언행으로 수놓았다. 이에 윤석열정부로서 최선의 선택은 상호주의에 입각한 당당하고 할 말을 하는 외교였다. 이런 대중외교 기조는 국민의 오해를 부를 만했다. 미국과 일본에 집중하면서 중국을 등한시하는 것으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오해의 소지가 다분했지만, 외교에도 타이밍이라는 게 있다. 판세의 흐름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변하는 외교 전략과 전술 전개 과정에서 접점에 달할 수 있게 된다. 소강상태가 때론 존재하지만 이를 타개하기 위한 접점을 다양한 경로와 방법을 통해 찾는 것이 외교다. 접점이 맞으면 외교에서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이를 추동하는 것이 국익이다. 국익이 맞으면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이유다.
한·중 간에 접점을 찾기 위한 우리 정부의 노력은 지속되었다. 윤 대통령이 중국 측 인사와 가진 공식 회담 이외에도 중국과 계속 이어진 물밑 접촉도 이의 방증이다. 2023년 한 해 동안 한·중 정상 간의 서한 교환은 10차례 이상, 총리는 5차례 이상, 외교장관은 5차례 이상 있었다. 이밖에 다자회의에서의 대화와 약식회담도 적지 않게 했다. 이런 소통의 결과로 한·중·일 3국 정상회의가 얼마 전 빛을 보게 된 것이다.
한·중 양국의 국익 접점은 이번에 신설 또는 재개하기로 한 협의체로 드러났다. 2단계 FTA 협상을 위한 수석대표회의의 6월 개최가 대표적이다. 또한 리창 중국 총리가 삼성전자와 별도의 만남을 요청한 데서 드러나듯, 중국은 우리의 투자를 원한다. 한중투자협력위원회를 13년 만에 개최하기로 합의한 것도 맥을 같이한다. 공급망 영역에서도 협력·조정협의체, 핫라인, 수출통제 대화체 등의 출범을 이끌어 낸 것은 우리 국익에 부합한 고무적인 사건이다.
안보 영역에서도 고위급 수준의 외교안보대화와 외교차관 전략대화뿐 아니라 1.5트랙 대화의 개최에도 합의했다. 한반도 안보 문제에 관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려는 양측의 의사가 반영된 것이다. 더 이상 사드 제재와 같은 비상식적이고 일방적인 조치로 한국과 대화와 관계를 단절하는 것이 중국에 이롭지 않다는 중국 내 분위기가 전해진 결과라 할 수 있다.
3국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중관계의 전환이 가능한 계기가 이제 포착되었다. 이의 결실은 우리 국익을 위한 협의체의 정상적 운영에 있겠다. 우리의 입장은 명백하다. 개방적이고 포용하는 자세로 이에 임하는 것이다. 협의체의 정상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중국의 자제가 필요하다. 더 이상 이를 정치화, 안보화하면 안 될 것이다.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한국의 사드 배치 등과 같은 정치적인 이유로 중국은 3국 정상회의를 4차례 취소한 바 있다. 더 이상의 협의체를 정치화해서는 안 된다. 정례화, 제도화된 협의체가 정치와 무관하게 운영되어야 하는 규범 수용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