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어제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고 9·19 남북 군사합의 전체의 효력 정지를 의결하자 윤석열 대통령이 즉각 재가했다. 이로써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는 물론 접경지에서의 포사격 등 군사훈련 실시도 가능해졌다. 북한 입장에선 저급한 ‘오물 풍선’ 도발이 부른 자업자득이라 하겠다. 북한의 추가적 무력 도발이 예상되는 만큼 군은 안보 태세 확립에 한 치의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9·19 합의는 2018년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체결됐다. 남과 북이 군사분계선(MDL) 일대에서 서로를 겨냥한 각종 군사연습을 중지하는 내용이 그 핵심이다. 문제는 2019년 2월 북·미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후 한국을 대하는 북한의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점이다. 9·19 합의를 대놓고 무시하며 각종 무력 도발을 감행했다. 반면 우리는 9·19 합의에 발이 묶여 북한 위협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 지난해 11월 북한이 군사정찰위성을 쏘아 올리자 정부가 9·19 합의 일부 조항의 효력을 정지한 것은 옳은 판단이었다. 이번 결정으로 합의 전체가 효력을 잃은 것은 우리 안보를 제약해 온 족쇄의 제거이자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군사 기술 발달에 따라 북한의 대남 도발 형태는 나날이 다양해지고 있다. 2022년 12월 무인기 영공 침투, 최근의 오물을 매단 풍선 날려보내기 그리고 위성항법장치(GPS) 교란 시도 등이 대표적이다. 이 같은 회색지대 전술은 얼핏 핵무기 개발이나 탄도미사일 발사보다 덜 심각해 보이나 우리 국민의 심리와 군의 사기에 미치는 악영향이 지대하다. 북한은 앞으로도 계속 무력 도발을 감행할 것인 만큼 군은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무엇보다 북한의 회색지대 전술에 초점을 맞춰 그에 맞설 역량을 키워야 한다.
금번 9·19 합의 효력 정지는 치졸한 오물 풍선 도발을 저지른 북한을 겨냥한 준엄한 경고 차원에서 불가피했다. 그렇다고 우리의 대북정책이 지나치게 강경 일변도로만 나아가선 곤란하다. 벌써부터 서해 5도를 비롯한 접경지 주민들 사이에선 ‘불안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는 북한의 도발 수위를 봐 가며 그에 걸맞은 비례적 대응을 하는 것이 옳다. 남북관계 긴장을 일정한 한도 안에서 관리해 나가는 전략적 유연함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