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의대 증원에 반발해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들의 사직을 받아들이고 병원 복귀 시 행정처분 절차를 중단하기로 한 것은 100일 넘게 이어온 의·정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평가다. 정부는 특히 비상진료체계가 한계에 봉착한 상황에서 의료계 요청을 받아들여 진료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내린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전공의 처벌이 임박했다는 관측에 병원을 지켜온 의대 교수들의 반발이 확산할 조짐을 보이자 ‘사직 불가’ 및 ‘처벌 불가피’ 방침을 일부 거둬들였다는 평가다. 아울러 전공의들의 이탈기간이 3개월을 넘기면서 올해 수련을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라서 병원 복귀를 설득할 명분이 사라진 것도 사직을 허용하게 된 배경으로 꼽힌다.
◆“비판 각오하고 명령 철회”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4일 의료개혁 관련 현안 브리핑에서 전공의들의 집단사직과 집단이탈이 이어진 2월에 병원장에게 내린 사직서 수리금지 명령과 전공의에게 부과한 진료유지명령과 업무개시명령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그동안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들에 대해 “법은 누구에게나 동등하다”면서 면허정지까지 언급했었다는 점에서는 정책 변화에 대한 비판도 이어질 수 있다. 조 장관은 “3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비상진료체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100일이 넘어서 전공의가 현장에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의료진은 지쳐가고 있고 중증질환자의 고통이 커지는 상황에서 전공의 복귀를 위한 정책 변경은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번에 사직서 수리를 허용해 달라는 현장 의견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어서 정부가 비판을 각오하고 사직서 수리금지 명령 등을 철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특히 100일 넘도록 지속된 사태 해결을 위해 “전공의들에게 돌아올 계기를 마련해달라”는 의료계 조언이 이어졌다는 전언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도 이날 “전공의 이탈이 장기화하면서 많은 의료계 원로들은 ‘돌아올 전공의에 대해서라도 하나의 계기를 마련해달라’는 조언이 많았다”며 “돌아오지 않는 게 현실인데 무작정 가는 건 개인적 선택을 어렵게 만드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돌아오실 분들은 여러 정부 명령 등을 철회하고 유연하게 처리해주면 그걸 계기로 돌아오겠고, 돌아오지 않을 게 분명하다면 다른 병원에서 일하는 등 자기 길을 찾게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판단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형선 연세대 의대 보건행정학 교수는 “정부로서는 의대 증원의 기본적인 큰 목표는 달성한 것”이라며 “정부는 전공의 이탈에 대해 강온책을 쓰며 돌아올 것을 호소했지만 그런 부분이 한계에 도달한 만큼 이젠 전공의들에게 선택하게 해야 할 시점이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복귀자, 차이가 있을 것”
정부는 조속히 복귀하는 전공의에 대해서는 차질 없이 수련이 이루어지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수련기간 조정 등을 통해 필요한 시기에 전문의 자격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전문의 시험을 먼저 치르고 이탈기간 만큼의 수련기간을 채운 뒤 면허를 발급하는 방법, 추가 시험을 통해 제때 같은 해에 면허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법 등을 고려하고 있다. 의료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고육지책인 셈이다.
정부의 조치에도 병원에 복귀하지 않는 전공의들에 대해서는 의료 현장 상황이나 전공의 복귀 수준, 여론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대응해 나갈 방침이다. 정부 관계자는 “행정처분이 아니더라도 수련 기회의 제한 등을 통해서 복귀자와 미복귀자 간에는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전공의들을 위한 정책 추진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의료개혁을 위한 사회적 논의 기구인 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통해 중장기적으로 전문의 중심 병원 전환을 논의하고, 의료체계 정상화를 위한 투자도 병행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전공의단체에서 제시한 제도 개선사항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대책 마련, 열악한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 의사 수급 추계를 위한 기구 설치, 전문의 인력 확충 방안 마련에 나설 방침이다.